다시 그리고 싶은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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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리고 싶은 풍경화
  • 손수자 수필가
  • 승인 2024.06.1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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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이 둘러쳐진 옛날 집 흙마루에 등받이가 있는 낡은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의자 두 개는 남쪽 하늘 밑 멀리 오대산 자락을 바라보며 틈틈이 빈자리를 내어주었다. 지나가는 사람이든 새들이든 바람이든 누그든지 와 앉아 쉬어가라고 했다. 그 집 앞을 지나던 내 시선이 그 의자에 머물곤 했다.

햇볕 따사로운 이른 봄날에 노부부가 조는 듯 꿈꾸는 듯 앉아 있었다. 그 정경이 잔설이 남아 있는 산촌에 온기를 불러왔다.

먼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온갖 풍상을 겪고 살아온 지난날의 회한을 풀어내는 것일까. 별 바라기가 유익한 낙이었을까.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덤덤하게 서로의 곁을 지키며 앉아 있는 노부부가 정겨워 보였다. 산촌의 평화로운 풍경화 한 점처럼 보였다. 

두분 사이에는 의자 하나를 더 놓을 만한 공간을 남겨 두었다. 

부부라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라보아야 상대를 바로 볼 수 있다고 일러주는 듯했다. 

고즈넉한 풍경 속에 나란히 앉아 있는 노부부 모습이 여운으로 남는 장면이었다. 빈 의자 두 개만 놓여 있는 날이 더 많았지만 그 전경도 정겨웠다. 나는 그 풍경들을 사진으로 남기겠다고 생각 하면서도 차를 타고 그냥 지나치곤 했다.

어느 날부터 그 집 흙마루에 낡은 의자 하나만 동그마니 놓여 있었다. 그 의자에 가끔 할머니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흙마루에 외로움이 감돌았다. 할아버지가 앉앗던 의자가 눈에 선하고 그 빈자리가 그리도 허전했다. 굽은 허리, 마른 체격의 할아버지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할아버지가 앉으셨던 의자를 굳이 치워버려야 했던 할머니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할머니 댁 텃밭에는 고추가 빨갛게 익어 가는데 할머니의 마음 밭에는 무서리가 내렸으리라.

할머니가 이 집에서 혼자 살 것인지, 자녀들이 모셔 가는지 궁굼했다. 홀로 살아갈 할머니의 여생이 염려되는 것이다. 이웃에 큰 따님이 살고 있어 할머니를 돌봐드리겠지만, 평생 고락을 함께했던 남편의 빈자리를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내가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여 꼼짝 못 하고 있을 때 가장 편하게 몸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남편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효성이 지극한 자식이라도 부모 병시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이다.

마을 길을 지속으로 운전하다가 습관처럼 돌담 집 흙마루에 시선이 갔다. 그런데 다시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지 않은가. 할아버지를 뵌 듯 반가웠다. 

할아버지 생전에 두 분의 모습을 찍어드리지 못하여 아쉬웠는데 의자 두 개가 놓여 잇는 풍경을 놓칠 수 없었다.

차를 세우고 마당으로 들어가 인기척을 냈으나 반응이 없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나란히 놓여 있는 의자 두 개를 찍었다. 

몇 발짝 뒤로 물러서서 의자 두 개가 놓인 집 전체 모습도 담았다. 그때 “누군데 남의 집을 함부로 찍는 거요?”라는 나무라는 소리와 함께 할머니가 뒤꼍에서 나오셨다. 나는 당황하고 미안해하면서 “ 죄송합니다. 아무도 안 계신줄 알았어요”라며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그러고는 의자 두 개가 다시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워서 사진을 찍었노라고 말씀드렸다. 얼마 전에 들미골로 이사 왔는데 아직 인사를 드리지못했다며 나를 소개하자 반기며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셨다. 할머니는 한숨을 내 쉬며 한을 토해내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의자를 볼 때마다 자꾸 그이 생각이 나서 할아버지 의자를 치웠는데 그 의자가 없으니 더 그리워서 다시 갖다 놓으셨단다. 

내가 두분이 의자에 앉아 계신 모습이 보기에 참 좋더라 했더니, 할아버지 혼자 의자에 앉아 있게 하면 마당으로 굴러 떨어질까봐 곁에 지켜 앉아 있었노라고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앉으셨던 의자에 앉아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할아버지는 향년 80세의 생을 마감하셨다고 한다. 59세부터 알츠하이머를 앓으셨으니까 21년간 힘겨운 삶을 사셨다. 수전증이 심해 할아버지 혼자서는 수저를 들 수 없어 할머니가 음식을 입에 넣어 드려야했다.  

( 다음호에 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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