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 백촌 김문기 선생 사당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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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백촌 김문기 선생 사당 건립
  • 이창재기자
  • 승인 2017.02.1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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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20일, 사당낙성식 및 위패봉안식 거행

사육신백촌 ( 白村) 김문기(金文起,1399~1456) 선생의 사당인 ‘충의사(忠毅祠)’가 건립돼 내달 20일 사당낙성식 및 위패봉안식이 거행된다.

김문기 선생의 순의(殉義) 561주년 추모제 행사가 열리는 이곳 사당에서는 사당 낙성식과 위패봉안식이 함께 거행될 예정이다.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 854와 855에 건립된 선생의 사당에는 유허비(충북도 기념물 44호)가 들어서 있으며 김녕 김씨 대종회에서 사비 15억을 출연해 지어졌다.

이 사당은 지난해 3월 18일 추모제 행사에서 충의사 기공식이 진행됐고 8개월여 만인 지난해 11월, 완공을 하고 낙성식을 위한 테이프커팅이 진행됐다.

백촌 김문기 선생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김녕(金寧), 초명은 효기(孝
起),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으로 옥천 이원면 백지리에서 출생했다.
1426년(세종8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으나,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를 한 후, 1430년에 예문관검열, 사간원좌헌납을 거쳐 1448년에 겸지형조사(兼知刑曹事)에 임명되었다.

그 후 1450년 병조참의를 거쳐, 1451년(문종 1) 함길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1453년(단종1년)에 내직으로 들어와형조참판에 제수되었다가 다시 외직인 함길도 도절제사로 나갔다.

그 후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공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1456년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주동이 되어 단종 복위사건으로 군기감 앞에서 처형되었다.

그 뒤 여기에 가담한 사람들 중에 6인의 절의(節義)를 들어 ‘사육신(死六臣)’이라 하였고, 1691년(숙종 17년)에는 국가에서 공인하여 육신을 복관시키고, 뒤따라 1731년(영조 7년)에는 김문기도 복관되었으며, 1757년에는 충의(忠毅)란 시호가 내려졌다.

지난 1977년 7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사육신 문제를 규명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 논의한 후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창(顯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
택하고, 이 결의에 따라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묘역에 그의 가묘가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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