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걸어 온 30년 교육의 길…그 힘은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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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 걸어 온 30년 교육의 길…그 힘은 ‘제자들’
  • 도복희기자
  • 승인 2020.05.1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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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스승의 날 특집
첫 발령 옥천중, 이때부터 10년간 문집 발간
창의적 교육은 소수 시골 학교서 가능 ‘선호’
조만희 전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만든 문집을 들여다 보며 추억에 잠겨있다.
조만희 전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만든 문집을 들여다 보며 추억에 잠겨있다.

 

‘사고(思考)뭉치 삼칠이네‘는 1999년 옥천중학교 3학년 7반 학급문집 제목이다. 문집 표지 사진 속 중학교 학생들과 담임이었던 젊은 조만희 교사는 환하게 웃고 있다. 그때 그 시절 학생들은 성장해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조만희 교사는 올해 학교를 떠나왔다. 퇴임 후 교직생활 중 제자들과 지내온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은 잔잔한 감동이었다. “수도동귀(殊道同歸), 참 교사라 하는 것은 가르치는 대상마다 방법이 다르고 가는 곳이 같지 않지만 끝내 도달하는 지점은 한 곳이 되게 하는 것이 훌륭한 스승”이라는 아버지(조성구 93)의 말씀이 교육의 핵심이라며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 현재의 상황만으로 아이들을 속단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학교 교사로 참교육을 실천한 조만희 교사와의 인터뷰를 하면서 이 시대 참 스승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그가 걸어온 교사의 길을 전한다.

△높은댕이집에서
충북 옥천군 동이면 지양리 ‘높은댕이집’에서 그를 만났다. 양철지붕의 흙집이었다. 작은 마당엔 봄꽃이 화사하다. 정갈하고 깨끗한 마을의 끝 집, 주인의 손이 많이 간 곳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참 스승의 길을 걸어온 분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이었다. 그가 머무르는 ‘높은댕이집’ 벽면에 학생들과 함께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이색적이다. 중학교 수업시간 20년 후에 만나자고 한 약속이 실현된 사진이었다. 흰 모시 두루마기를 입은 스승은 환하게 웃고 있고, 이미 사회인이 된 중학교 시절 제자들도 화사하게 웃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20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만나고 싶었던 스승과 제자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다는 긴 시간이 흐른 후에도 스승을 만나고 싶었던 제자들 가슴에 그가 어떤 스승으로 남아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 속 표정이 많은 것을 읽게 했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신뢰와 존경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표정이었다.

△사범대학 졸업 후
조만희 전 교사는 26세에 충북대학교 사범대 지리교육학과에 입학한다. 30세에 졸업하지만 4년 가까이 발령이 나지 않는다. 월부책과 음반을 판매하며 교사 발령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책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 때 친한 친구가 주도하는 충북전교조 창립대회에 일반인으로 참석하게 된다. 그 후 모임을 통해 전교조 활동을 하고 있는 멤버들을 알게 되고, 전교조에서 가르친 실천사례 발표나 학교 현장 수업 사례 발표를 듣고 보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교육관에 깊이 공감했다. 그중 하나가 문집 만드는 거였다. 글을 잘 쓰는 것과 무관하게 전 학생이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9년 9월 1일 전교조 해직교사가 1500여 명에 다다랐다. 그로 인한 빈자리와 당시 과밀학급 해소를 위한 차원에서 대거 교사 발령이 났다. 그도 옥천중학교로 가게 되었다.

△발령
충북 옥천중학교를 첫 발령지로 교사로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조만희 전 교사는 해마다 담임을 맡기를 원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이 보람 있었기 때문이다. 전교조 활동을 통해 이행하고 싶었던 교육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중 하나가 담임으로 1년간 지내면서 해마다 문집을 발간하는 일이었다. 학급 전원이 참석해 일기나 활동사항, 사진, 그림 등으로 자세히 기록해 출간했다. 아이들은 글쓰기를 힘들어했지만 보람 있어 했다. 여러 가지 힘든 점이 있었지만, 문집 발간은 10년 동안 계속되었다.

△추억
조 전 교사는 학교가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가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흥미로운 숙제를 내고 재밌게 활동하기 위해 연구했다. 그중 또 다른 하나가 ‘학급소풍’이었다. 강과 산은 훌륭한 놀이터였다. 조 전 교사는 시골 마을 마당이 있는 거처(높은댕이집)를 만들면서 학생들이 이곳에서 놀다 갈 수 있도록 했다. 졸업할 때는 1박 2일로 지내도록 배려했다. 학교에서 높은댕이집까지 걸어와 같이 삼겹살을 구워 먹는 일이 학생들에게 행복한 추억이 될 거라 생각했다. 자전거로 속리산 갔다오기, 20km 걸어서 체험기록 쓰기 숙제를 내기도 했다. 숙제를 다 해 온 것은 아니지만 실천한 학생들은 의미있게 생각할 거라고 믿었다. 그는 고등학교보다 시골 중학교에서의 근무를 원했다. 입시 압박감이 덜한 중학교에서 창의적 교육의 폭이 넓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는 순수하게 마음만 통하면 하던 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려운 시대”라며 “산과 들로 뛰어다니는 시대가 아니라 놀 수 있는 게 다 집 안에 있다. 인터넷이나 게임, TV 속 세상이 현재 학생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시골에 살면서 산딸기를 모르는 학생들도 있다. 요즘은 땀 흘려 같이 활동하고 어울려 할 수 있는 것들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편지
손편지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이메일이 아니라 꾹꾹 눌러쓴 편지가 제자들에게서 올 때 기뻤다. 제자들에게서 온 편지 답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했다. 학기 초 담임을 맡으면 학부모에게도 일년 동안 아이들에게 교육할 내용에 대해 편지를 써서 보냈다.


△제자들
그는 자기주장이 강했던 여러 제자들을 떠올렸다. 1999년 담임을 맡았던 옥천중학교 3학년 7반 학생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특히 정민우 학생은 교직생활을 하면서 인상에 많이 남고 결혼식 때 주례도 해줬단다. “당시 민우 학생은 집안도 어렵고 표정이 밝지 않았는데 담임인 나를 많이 따랐다. 지금은 잘 성장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르고 긍정적 마인드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 보기 좋고 인상에 많이 남는다”며 “옥천의 보배로운 제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흐뭇해했다.

△전시회
30년 동안 제자들과 활동해 온 자료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기록한 사진, 문집, 반장 포스터, 일기, 제자들이 보내온 수백 통의 손편지가 보물이다. 올 초 퇴직하면서 이 모든 것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고 싶었다. 전시를 통해 제자들과도 추억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랐다. 코로나19로 연기되어 아쉽지만 9월 초 개최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자
30년간의 교사로서 걸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이들이었다. 생활해 보니 아이들이 이뻤다. 끝까지 아이들이 이뻤던 게 교육자로 끝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이었다. 아이들을 어른들이 따라가지 못한다.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 같이 배운다. 주는 것 못지않게 아이들이 주는 것이 많았다고 지난날을 회상하는 조만희 전 교사는 올해 퇴직하면서 1~2년간은 쉴 거라고 했다. 그동안 열심히 생활해온 마음을 식히고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느긋하게 찾아볼 생각이란다. 향후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조만희 전 교사가 높은댕이집에서 제자들과 같이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만희 전 교사가 높은댕이집에서 제자들과 같이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높은댕이집 전경.
높은댕이집 전경.
10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온 문집 중 한권의 표지
10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온 문집 중 한권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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