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손들이 쉬어 간다 해서 ‘적등원’, 서원이 있어 ‘원말’이라는 지명을 지닌 ‘원동1리’.
마을 오른편에는 충신이자 효자로 이름이 높은 백촌 김문기 선생의 생거지 효자동이 있고 왼쪽으로는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대망을 키우던 구룡촌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마을 앞 적등전에는 지금은 높다란 철교와 견고한 적등교가 설치되어 있지만 당시만해도 이러한 다리가 없어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만 했다. 그래서 적등나루에는 사람과 말(馬)로 시끌벅적한 나루터 풍경도 펼쳐지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모두가 과거 속 추억으로만 자리하고 있다.
올해로 원동1리 이장 4년 차에 접어든 김영일 이장(77).
김 이장은 이곳 원동1리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철도직 공무원과 군대 생활을 빼놓고는 단 하루도 원동1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그만큼 고향 원동1리를 사랑한다는 증거다.
“특별히 불편하거나 주민 숙원사업은 없다”라는 김 이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포도농사를 지었으나 인력난으로 지금은 소규모 논농사만 짓고 있다.
주민 대부분 묘목업에 종사
“묘목의 고장이라는 명성답게 주민 대부분은 묘목업에 종사를 하고 있다”는 김 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일들은 이미 마무리를 지었다. 젊은 시절 농촌지도자 생활을 지낸 경험을 되살려 마을 입구 고샅길 확포장과 가가호호 연결돼 있는 전기선로 정비 등 다른 이장들이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세세한 것들까지도 일일이 살피고 정리를 마쳤다. 마치 마을 일을 자신의 일처럼 챙겨서인지 주민들은 꼼꼼한 성격의 김 이장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낸다.
그 중에서도 지난해 마무리를 한 농로확포장사업과 경로당 태양광 설치, 방송시설 개선 등은 주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이처럼 수 년 동안 골칫거리로 여겨져 오던 문제를 김 이장이 나서 해결하자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기라도 하듯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김 이장을 추켜 세웠다.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을분위기 조성
이러한 김 이장에게도 걱정거리는 있다.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귀농·귀촌인’들과의 관계다. 원주민들이야 워낙에 순진하고 내것 네것 따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보니 웬만한 것은 양보하고 이해하려 들지만 외지에서 들어온 귀농·귀촌인들은 다르다. 일단은 자신들의 권리와 주장을 앞세운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오해도 하고 감정도 쌓인다. 그렇다고 김 이장이 가만 있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주민 간 불협화음이 발생할 경우 즉시 뛰어 든다. 문제의 중심에 선 김 이장은 양쪽의 말을 다 들은 후 가능한 서로가 감정을 상하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해결사 노릇도 톡톡히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원주민이나 귀농·귀촌인이나 모두 양보하고 배려할 줄 아는 그런 마을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원동1리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장수마을이라는 사실이다. 마을 안에 있는 ‘월이산’이 내뿜는 기운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원동1리에는 98세 이상된 어르신이 아홉명이나 살고 있다. 다른 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김 이장은 현재 게이트볼옥천군지회 감사와 게이트볼옥천군지회 원동분회장을 맡아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불편한 사항은 무엇인지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원동1리는 85가구에 160명이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