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달이었나. 집에서 일을 하다 잠시 쉬는데 아주 귀여운 고양이가 한 마리 오더니 들러붙는다. 이 고양이는 강아지보다도 더 사람에게 파고든다. 어떤 땐 너무 귀찮을 정도로, 떼어내면 들어 붙고 밀어내면 파고든다.
어디서 왔는지 첨보는 녀석인데 얼굴이 둥글 넓적한 게 보통 귀여운 게 아니다. 뉘 집 고양인가? 못 보던 녀석이 보여 관심이 간다. 하지만 야멸치게 밀어낸다. 이 녀석을 귀여워하면 자꾸 찾아와 귀찮게 할 것 같아서다.
반려견은 주인만 따르지만 고양이는 지조가 없다. 누구에게나 따르고 파고든다. 주인이 따로 없고 임자가 따로 없어 아무나 데리고 살면 된다. 일부러 박정하게 쫒고는 다시 일을 했다. 이 녀석은 그 후로도 가끔 찾아오고 거리에서도 종종 눈에 띄었다. 누구네 고양이인데 밖으로 나도나 궁금했다.
이 후로는 한동안 이 녀석이 안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눈에 뜨이는데 아주 꼬챙이처럼 말라 있고 걸음마저 비틀거린다. 그리고 그게 앞 집 고양이임을 알았다. 그 집 주인 말이 충격적이다. 잃어버려서 신고도 하고 한동안 찾았단다. 한데 누가 고양이 뒷목에 바늘을 꽂아 다 죽게 된 걸 병원에 가서 빼 주었단다.
아니 누가 잔인하게 고양이 목에 바늘을 꽂을까.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 집 주인이 그렇다는 데야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동물인가. 어디까지 잔인해지는 게 사람인가. 인산보다 더 잔인한 동물이 어디 있는가. 자기가 기르던 개를 먹는 비정한 게 사람 아닌가.
바싹 마른 고양이가 털을 깍아놓아서 더욱 볼품이 없었다. 윤기 나는 털이 몸을 감싸고 통통할 때는 정말 귀여웠다. 얼굴이 둥근 게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였는데 이렇게 비틀비틀 딴 고양이가 되어 있다니.
비쩍 말라 볼품없는 고양이가 빤히 쳐다본다. 그 눈망울에 슬픔이 가득하다. 넌 인간이 싫지도 않니? 쳐다보는 얼굴에 울음 같은 게 보인다. 그래 고양이야 미안하다. 어쩌다, 누가, 왜 너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니. 내가 너 보기도 부끄럽다. 아무리 인간이 못돼 먹었기로서니 산 고양이 목에 바늘을 꽂는 그 마음은 어떻게 생긴 걸까. 그 얼굴은 어찌 생겼을까. 우리 부부는 한동안 그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요금도 길거리에서 가끔 녀석이 보이는데 조금 모습이 나아졌다.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옛날 모습을 보여 다오. 조금 건강이 나아지긴 했어도 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려는지 어려울 것 같다.
개를 기르다가 팔면 몇일간 밥맛이 떨어질 정도로 서운하다. 옛날에나 팔았지 지금은 안 판다. 시대따라 간다. 지금은 끝까지 같이 하다 세상을 뜨면 장례까지 치러 준다. 애완견도 아니고 반려 견으로 나의 가족이니까.
한데 지금도 기르다가 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긴 제 자식도 죽이고 제 부모도 갖다 버린다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반려견을 버리는 사람의 심리를 모르겠다. 설마 자기가 기르던 반려견을 버릴까 싶지만 실제로 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집 나온 개들은 우선 몰골이 추해진다. 못 먹고 관리를 못 받았으니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고 털에는 오물이 뒤덮여 그야말로 목불인견이 된다. 그런 개는 유기견 보호소로 들어가면 다행이지만 거리나 들판을 떠돌다가 결국 죽고 말 것이다.
농수로에 빠져 다 죽어가며 애처롭게 우는 개를 구해준 적이 있다. 끌어올리니 고맙단 인사는 안 하고 물만 털며 튀기더니 비틀거리며 달아나기 바빴다. 대개 집 나온 개들은 사람에게 시달려서 그런지 도망가기 바쁘다. 더러는 절뚝거리기도 하고 그 불쌍한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끝까지 책임질 자신 없으면 아예 개를 입양시키지 마라. 남이 갓 쓰고 장에 가니 옆집 사람 시래기 갓 메고 따라간다더니 누구 애완견 기른다고 따라할 일 아니다.
나는 기르던 개가 병으로 죽어 너무 가슴 아픔 일을 당하고부턴 아예 개를 키우지 얺는다. 그 개하고 약속을 했다. 다른 개 입양하지 않겠다고.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