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뱀이 눈에 안 뜨였다. 뱀뿐이 아니고 그 먹이가 되는 개구리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 생태계를 교란한다고 떠들썩했던 황소개구리도 사라졌다. 뱀의 먹이가 되는 개구리는 천적이 사라지면 더 성해져야 하는데 같이 자취를 감췄으니 이상한 일이다. 저희들이 소용가치가 없어졌으니 알아서 사라졌나.
한데 요즘 뱀이 눈에 뜨이고 있다. 뱀과 함께 개구리도 보인다. 같이 사라졌다가 같이 보인다. 개구리는 뱀의 먹이가 되는데서 삶의 의미를 찾나보다.
우리 어릴 때 들판에 나가면 뱀이 개구리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보일 때도 있었다. 꽤애액 어디서 에처로운 개구리 비명소리가 들리면 거긴 분명 뱀이 개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난 그 개구리가 너무 불쌍하고 뱀이 미워 돌을 던졌다. 맛난 식사 중이던 뱀은 혀를 날름거려 욕을 하며 달아났다.
뱀의 이빨에서 풀려나 채 죽지 않은 개구리는 도망도 못가고 넋이 다 달아났는지 눈만 끔벅이며 꼼짝도 못했다.
그 흔하던 뱀이 한동안 눈에 안 뜨였다. 뱀이 흔하던 시절 산에 물고기나 잡는데 쓰는 그물이 울타리처럼 삥 둘러 쳐져 있는 모습이 많이도 눈에 뜨였다. 뱀을 포획하기 위해 쳐놓은 그물이다.
씨가 말랐는지 한동안 뱀이 보이지를 않았다. 요즘이야 뱀 그물 놓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뱀이 살아나고 있는가 보다. 뱀은 그래서 살아난다고 치자. 개구리는 뭔가. 저희들 상전을 모시기 위해 따라서 살아나고 있는가.
난 농사를 좀 짓기 때문에 뱀이나 개구리를 직접 목격하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밭엘 가다 길가에서 또는 밭둑에 풀을 제거하다 거기서 뱀이나 개구리가 금년부터 보인다. 뱀이 흔하던 시절엔 개구리도 지천이었다. 이른 봄, 밭에 춘경을 하다보면 경운기 날에 겨울잠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한 개구리가 많이도 희생을 당한다. 여름 논 밭둑엔 발에 밟힐 정도로 흔한게 개구리였다.
앞으로 그것들이 옛날처럼 흔해질 것인지는 잘 몰라도 자연이 살아나고 있음에 감사할 일이다. 한데 뱀이나 개구리가 한동안 안 보였어도 우리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진 않는다. 개구리는 몰라도 뱀은 누구도 기피하는 혐오 동물이다. 자연이 회복되고 있음에 감사할 일이지만 나물 하나라도 뜯으려는 아낙네들은 뱀을 보면 질겁할 것이다. 여자들뿐이 아니고 웬만한 남자들도 뱀은 징그럽다. 개구리만 살아나면 안되는가.
뱀은 또 매우 위험한 동물이다. 맹독을 가진 독사, 살모사는 위험천만이다. 실제 자기 남새밭에서 독사에 물려 목숨을 잃은 사례도 알고 있고 뱀에 물려 몇 개월씩 자리에 누워 고생을 하는 경우도 시골 동네에서 적잖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요즘엔 좋은 약도 있고 병원 치료도 잘하니 옛날처럼 큰 고생은 안한다 하더라도 뱀은 징그럽고 매우 위험하다. 생태계도 좋은 것만 가려서 복원이 되면 좋으련만.
농사를 지어보면 피해를 주는 동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가 따져보니 큰 짐승인 멧돼지 고라니에서부터 까치, 꿩, 비둘기, 족제비, 청설모 등등 많기도 하다. 내가 강냉이를 까치, 꿩이 안 남긴다고 글을 쓰기도 했지만 족제비조차도 피해를 입힌다.
집사람이 올해 손주들 준다고 조금 심은 땅콩을 망으로 세 겹씩이나 씌워 놓아도 다음 날 밭엘 가면 어디로 들어가는지 망을 쳐들고 들어가 땅콩을 파먹는다.
그것도 까치나 꿩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웠다. 양쪽 망 끝을 흙으로 파묻고 핀을 박아도 들어간다. 참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땅을 판 흔적이 있는데 그래도 그게 까치, 꿩이 그런다고만 생각했는데 며칠 전 거기서 족제비가 도망가는 게 눈에 뜨였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제가 한 일을 까치나 꿩에게 뒤집어씌우던 녀석은 여지없이 나에게 들키고 말았다. 족제비는 땅을 파는데 선수니 망을 치고 핀을 박아도 도저히 막을 방도가 없다. 족제비까지 나서서 농사를 망치다니... 내년엔 아예 땅콩을 안 심고 손주들에겐 사서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