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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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
  • 손수자 수필가
  • 승인 2024.10.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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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경쾌한 음악이 실내에 울려 퍼진다.
째즈, 차차차 가락이 흥겹다. 어르신들이 익숙한 동작으로 리듬을 탄다. 움직임이 날렵하지 않으나 기분은 날아갈 듯한 표정이다.


라인댄스 지도 강사가 “오늘은 새로운 댄스를 공부합니다. 케이준 샹 스텝은 맘보입니다”라고 말하자 흡겹던 실내에 찬물을 끼얹은 듯 착 가라앉은 분위기로 바뀐다. 곡 제목을 어르신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 말하니 의기소침이다. 음악은 신나는데 지도 강사를 따르는 발동작이 무겁기만 하다. 그러나 배우는 열기는 후끈하다. 좀 틀리면 어떠하랴, 어깨가 절로 들썩이는데, 하나, 둘, 셋, 넷, 구령에 맞추어 한 동작씩 따라 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라인댄스는 많은 무희가 한 줄로 늘어서서 추는 희극적인 춤이다.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어서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다. 


사교댄스처럼 서로 몸을 접촉하지 않아도 되고, 신사 숙녀의 도를 강조하지 않아 자유롭다.
우리교회에서 운영하는 장수대학 프로그램에 라인댄스 시간이 할애되어 모두 즐겁게 참여한다. 매주 목요일마다 라인댄스를 배우는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나도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교사 역할을 하면서 그분들과 여러 가지 체험을 하는 일이 즐겁고 보람있다.


나란히 줄을 서서 라인댄스를 하는 40여 명 중에 눈낄을 끄는 두 분이 있다. 한 분은 뚱뚱한 몸에 박자를 놓쳐 좌우충돌하면서도 열심히 따라 하는 79세의 여자 어르신이고, 또 한 분은 호리호리한 몸매에 검은테 안경을 쓴 81세의 남자 어르신이다.


79세 여자 어르신은 어린 나이에 양양 산골로 시집와서 오늘날까지 아들 셋을 키우며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완고한 남편 때문에 큰소리 한 번 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나들이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올 봄, 읍내에 사는 조카로부터 교회에서 운영하는 장수대학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활동하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기쁨을 누린단다. 할아버지에게 장수대학에 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할 게 뻔한 일이라 아예 선포하셨단다. “나 장수대학에 못 나가게 해도 소용없소.”라고.


81세 남자 어르신은 장수대학에서 최고령이다. 대부분 여자 어르신이고 남자는 고작 서너 분인데 그중의 한 분이다. 그분은 다른 남자 어르신들이 여성들 틈에 끼여 라인댄스를 즐기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쑥스러움 때문인지,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의자에 앉아 구경만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어쩌다가 맨 뒤에 서서 따라 할 때는 열심히 하신다. 남들이 오른쪽으로 갈 때 왼쪽으로 가고, 뒤로 돌아설 때 그대로 있으니 여러 사람과 얼굴을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멋쩍게 웃으며 민망함을 덜어낸다. 동작을 도와드리고 잘 따라 할 때 칭찬해드리면 홍조가 얼국 가득 번진다. 마음은 소년인 듯싶다.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의 13.1%라고 하며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단다. 주변을 둘러보면 고령사회임을 실감하게 된다. 농산촌에서 60대는 청춘이다. 우리동내 노인회의 평균 연령이 70세가 넘는 것을 보면 막연하게만 여겨지는 100세 시대가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노인들 스스로 자기 몸을 돌보고 지역사회의 장수 프로그램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그들은 ‘구구 팔팔 이삼 사’ 라고 외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동안 앓고 이승을 떠나자는 바람이요, 회식 자리의 구호다. 그런데 요즘은 구구 팔팔 이삼 일, 즉 99세가 되도록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고 벌떡 일어나자는 뜻이란다. 음악이 바뀐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대중가요다. 어르신들의 눈과 귀가 활짝 열린다.

움직임이 발바닥에 스프링을 단 듯 탄력이 있다. 모두의 애창곡에 이미 배워 익숙한 라인댄스라서 흥겹고 신난다. 세상만사 근심 걱정 다 제쳐 놓은 즐거운 표정들이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목청높여 노래하며 춤추는 어르신들의 열기는 틀림없는 이팔청춘이다. 그들과 함께 춤추는 나도 나이를 잊는다. 더 건강하고 똑똑해진 만 60~75세 사이의 사람들을 노년이라 아니하고 신중년이라 하지 않은가.


그래, 나는 신중년이다. 나이를 의식하며 뒷걸음질하고 겉늙어 가는 내 마음에 청춘이 들어선다. ‘그렇지, 내 나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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