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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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4)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9.07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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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에 든 핸드폰 하나로 전화도 하고 소식도 주고받고, 사진도 찍고 즉석에서 보내고, 물건도 사고, 송금도 하고, 영상으로 얼굴도 볼 수 있고, 뉴스도 실시간 보 고, 이렇게 편리성과 속도감, 재미에 푹 빠져 살다 보면 부부간, 부모와 자식 간의 만남과 대화보다 강한 자극을 받아 부모도 자식도 각자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거북목 가족이 되고 말지 않겠니? 아비야, 이젠 너부터 페이스북과 블로그, 각종 메신저와 카톡 사용시간을 과감히 줄여 기계에 빼앗겼던 오염된 시간을 되찾아 가족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 시간을 사랑하는 네 아내와 효원이와 함께 여행이나 산책, 독서 같은 아날로그 체험으로 되돌려놓는 정보의 구조조정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줄여야 하는 것은 체중만이 아니다. 자녀들은 아빠, 엄마의 스마트폰 사용시간에 따라 자녀의 이용시간도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TV, 신문, 책 등 기존 매체를 이용할때 자녀들은 마찬가지로 부모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한다. 더군다나 핸드폰의 청색광에 오래 노출되면 망각 파괴까지 일어난다고 하니 이로 인한 파괴는 인간성 파괴, 가족 파괴, 사회적 유대 파괴 는 물론 신체적 질환까지 초래한다는 사실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며칠 전 엄마가 미용실에서 파마하고 앉아 있는데, 부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들어오더구나. 큰아이가 예닐곱 살, 동생이 다섯 살쯤 돼 보였다. 동생부터 의자에 앉히고 미용사가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남은 큰아들은 아들 대로 각자 조용히 앉더니 일제히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한 가족 4명이 들어왔는데 부부도, 부자도, 모자도 대화 한마디 없이 전화만 들여다보았다. 작은 아이 머리가 끝나고 큰아이를 앉게 하고는 여전히 젊은 엄마, 아빠는 꼼짝 않고 전화만 들여다보고 있더구나. 그동안 작은 아이는 혼자였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다정한 부부의 모습도,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모습이 아닌 그저 남처럼 서로가 각자의 전화기에만 온 정신이 쏠려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모는 부 모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본대로 배운 대로 사는 법이다. 부모가 만들어가는 가족의 모습이 곧 자식들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 효원이에게는 세상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너희 부부가 부모이면서 가장 큰 스승이다. 세상을 살아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사회성이더구나. 사회성은 짧은 기간에 길러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성이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일 함께 하는 가족과의 식탁 대화 속에서, 엄마가 슈퍼마켓에 가서 식료품을 사 오라는 심부름을 하고 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친구와 말다툼하다 토라진 후에 오는 후회 속에서, 때로는 시험을 망쳐서 오는 좌절감을 느끼면서, 배고픈 친구와 떡볶이를 나누면서, 추운 겨울 지하철역 계단에 웅크리고 구걸하는 할아버지에게 동전 한 닢 넣는 쨍그랑 소리의 울림을 듣는 일상 속에서, 다양한 만남과 부딪힘을 통해 대인관계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사회성 능력의 결핍은 학교 교육보다는 가정교육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의 행복과 성공을 바라지 않겠냐. 부모의 일생은 어쩌면 자식의 행복과 성공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부모 대부분이 그랬듯이 엄마 역시 좋은 성적표와 일류 대학이 너의 성공과 행복을 보장할 것이라는 잘 못 된 믿음을 가졌고, 그것이 오히려 너의 사회화를 막고 앞날을 그르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대인관계가 부족하여 사회에 나가 적응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과연 사랑하는 자식의 바라던 행복한 삶이겠니? 지적 능력에 앞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남과 어울려 지내는 참된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어느 날 TV에서 본공익광고의 문구가 생각난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하고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 참된 교육의 시작입니다.’아비야. 네 나이 벌써 불혹의 나이가 넘었구나. 초롱초롱하고 새까만 너의 눈망울은 엄마의 희망이었고, 반듯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네 모습은 엄마의 자랑이었다. 어느덧 네가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또 아빠도 되었구나. 엄마에게 네가 둘도 없는 아들이었듯 네게 둘도 없는 어릴 적 너를 닮은 예쁘고 영리한 딸, 우리 효원이가 있으니 네가 더 무엇을 바라겠니?

너는 결혼 전, 이해심 많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자, 그리고 가정을 중시하는 가정적인 여자, 거기에 엄마, 아빠를 잘 모실 수 있는 여자라면 결혼하겠다고 강조했었지. 엄마는 그럴 때마다 엄마는 상관 말고 네가 살 여자이니 너만 좋으면 하라고 했었다. 너는 끝까지 사람 됨됨이와 인간성만 좋으면 된다고 했고, 네 말에 마음속으로 “역시 내 아들은 다르다.”고 생각했지. 그러고 너의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하기로 했었지.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 네가 천생연분으로 결혼하게 된 네 아내는 네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더냐? 네가 원한대로 착하고 예쁘고 학벌도, 집안도, 그리고 엄마와 아빠한테 그 이상 잘하는 며느리가 어디 있겠 니? 엄마는 우리 며느리 이상 더 바라지 않는다. 엄마는 너희 부부가 알콩달콩 재미있게 서로를 위하여 지내고 있는 것만 봐도 그저 만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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