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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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충북도립대 겸임교수
  • 승인 2023.09.1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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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스승과의 조우(遭遇)
「오죽(烏竹) ․ 맹종죽(孟宗竹)」에서 만난

 오죽은 검고 윤이 나는 대나무고 맹종죽은 동이 흐벅지게 굵은 대나무 종류란다. 김영랑은 자가웃 길이의 식탁에 오를만한 어리고 숫스럽게 살찐 죽순을 이른 아침에 뚝뚝 끊는 재미는 손아귀에 쾌적한 맛을 모른 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에겐 죽순을 따본 기억이 없다. 그러니 죽순을 따는 손아귀의 느낌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대나무에 대한 생각을 하루 종일 한 적은 있다. ‘옳고 곧다’며 사군자의 표상으로 추켜세워지던 대나무. 그 대나무 숲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어릴 적 외갓집 뒤란은 대나무 숲이었다. 나는 외갓집을 생각하면 밤나무 감나무로만 동산을 만들고 있던 우리 집 풍경을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가을이면 초록색 쉼표들을 땅 위에 떨구어주던 우리 집 나무들. 나는 그 동산의 나무들을 붙들고 살았다. 내 안에 금과 틈이 생길 때마다 구호 신호처럼 그 기억들을 부여 잡았다. 

일곱 살이었을 것이다. 아니었을 지도 모르지만 내 기억은 그렇다고 말한다. 뒤란을 지나 슬며시 대숲으로 들었다. 

그때, 대나무가 ‘곧아서 좋다’는 마음에 변함이 없으려다 실패하고 대숲을 나와 버렸던 기억이 오래 오래 머물렀다. 그때 기억은 그랬다. 그 후, 어느 수필가의 ‘선비가 대나무의 속성을 닮아 그리도 시끄럽다’는 말에 가끔씩 동의하며 생각에 잠기곤 했었다.

그러나 지천명의 길을 걷는 나는, 누군가의 가슴을 열고 말하고 싶다. 대나무가 그리도 웅성거리던 것은 바람을 견디려는 몸짓이었다는 것을, 무수히 뜨고 지던 아우성의 견딤이라는 것을. 내가 그것을 알아내기까지는 얼마나 지루한 반복의 길을 수없이 걸어야 했던가. 모처럼 봄날 같다. 하늘이 높고 바람이 간혹 불어준다. 남쪽으로 향하는 가벼운 마음이 깃털을 달고 날아가는 듯하다. 어제 내리던 비는 그치고 오늘 날씨는 바짝 고개를 들었다. 

경부, 대진, 호남 고속국도를 오르내리며 호남의 넓은 평야를 바라보며 골 깊은 옥천을 떠나왔다는 해방감을 느끼며 부안 석정 문학관에 이른다.  

지난해 5월에 다녀갔으니 1년이 채 안 되어 다시 찾은 석정문학관. 그때는 문학회 회원들과 왔지만 지금은 정지용과 관련된 동시대인들의 문학의 흔적을 찾으러 헤매며 다시 오게 되었다. 그때보다 더 많이 궁금하고 그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이 보아야하고 더 많이 보여야한다. 석정문학관에는 정지용과의 인연을 이렇게 적고 있다. 

1930년 서울로 올라가 석천 박한영 대종사 문하에서 1년 남짓 공부하다가 조종현(시조시인. 소설가 조정래 부친) 등 원생들과 함께 문예작품 회람지「원선」을 만들었다. 이때 박용철이 주관하는「시문학」과 연결되어 당시 시단의 거두였던 정지용을 비롯, 이광수, 한용운, 주요한, 김기림 등의 문인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인연으로 1931년 시문학 3호에 「선물」을 발표하고 시문학 동인이 되었다.  

‘시단의 거두였던 정지용’을 신석정은 그렇게 만나고 있었다. 이렇게 「시문학」은 불과 3호로 막을 내리지만 프로 문학의 목적성, 도식성, 획일성에 반하여 순수문학을 옹호한 모태가 되었다. 또한 시를 언어예술로 자각함으로써 현대시의 시발점을 마련하게 된다. 

「시문학」 동인의 삼가(三家)를 정지용, 박용철, 김영랑이라 이곳에서는 소개하고 있다. 2009년 「신석정 전집」 5권이 국학자료원에서 간행되었다. 그동안 몇 년에 걸쳐 허소라, 김남곤, 정양, 오하근 등이 신석정 전집 간행위원회를 구성하여 신문사와 도서관과 인터넷을 전전하면서 신석정의 모든 작품을 수집하여 수록 작품의 출처와 연대를 밝히고 이를 분류하여 1권은 시집, 2권은 유고시집, 3권은 번역시집, 4, 5권은 산문집으로 발간했다. 

나는 옛 스승과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안부 한 번 여쭙지도 못한, 다가가기 어려워 감히 안부가 궁금하여서도 아니 될듯한 스승님. 그 스승님의 존함을 신석정과 꼭 닮으셨던 나의 스승님을 다시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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