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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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처
  • 이종구 수필가
  • 승인 2024.01.0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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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2월이 지나 한해가 갔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고, 새해의 달력이 우편함에 있는 걸 보면 왠지 마음이 조급해지고 그러면서도 편안함을 찾고 싶은 것은 다가오는 겨울을 보내고 새봄을 맞이하는 준비 기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2월은 1년의 석양 무렵이 아닌가 싶다. 지난 여름의 혹독한 무더위와 태풍에 긴장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따뜻함을 찾는 시기,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시기로 웬지 쓸쓸함을 느끼는 시기, 장롱을 뒤져 겨울옷을 찾아보고 문득 달력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생각해 보는 시기이다. 어둑해진 도로에는 퇴근해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들이 더 분주해 보인다. 그러니 밖 보다는 안(內)에 있고 싶은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이다. 그러면서 새해-1월을 맞는다.

몇 년 전 초등 2학년 손자가 와서 사흘을 묶어 간 적이 있었다. 모처럼 왔기에 몇 몇 전시관으로 관람을 다녔다. 하루는 좋아하더니 이틀째 아침부터 뭔가 불만이 있는 듯 기분이 가라앉은 모습이다. 그러고는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 할아버지 집도 네 집이나 마찬가지다. 내일은 더 재미있는 곳으로 구경 가자. 할머니가 맛있는 것도 해 주실거야” 몇 번을 달래도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집인데도 제 집이 아니니 뭔가 불편한 모양이다.

집은 안식처이고 보살핌을 받으며 충전하는 곳이다. 그래서 동물들도 제 굴을 파고, 새들도 둥지를 만든다. 후손을 양육하고, 물리적, 정신적 안정을 취하며 가족 간 화목을 다지는 역할을 하는 곳이 집이다. 이런  안식처가 치부(致富)의 수단으로 전락된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자료의 '미성년자 주택 보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9~2021년) 미성년자 주택 매수 건수는 전체 대비 2019년 0.06%에서 2021년 0.17%까지 늘었다고 한다. 또한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2023년 1~10월 동안 18세 이하 미성년자가 임대인인 부동산 임대차 계약이 3236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2021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무주택가구 비율은 43.8%라고 하니 인구의 절반 정도는 내 집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뉴스의 한 화면에서는 아파트 분양 청약 신청 들이 긴 줄을 선 것을 본적이 있다. 그런데 그 중에 정말 내 집이 없어 청약하는 사람들보다는 있지만 다른 이유로 청약하는 사람도 꽤 많다는 기자의 리포트가 전해진다. 갑진년이라는 새해, 청룡의 해라고 한다. 용(龍 )이 도(道)를 깨우치면 비늘이 푸르게 변해 청룡이 된다고 한다. 모 재벌의 딸은 “재산 많은 집에서 태어난 것도 실력의 하나”라고 하여 세인의 빈축을 산 일이 있다. 평생을 넉넉잖은 삶을 꾸려가면서도 모은 전 재산을 학교에 기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런 연말 연시에 우리들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집은 결코 돈이 아니고 삶의 안식처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셋방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며 한 푼 두 푼 모아가는 43.8%의 무주택자들이 올해는 내 집-안식처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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