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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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 박미련 작가
  • 승인 2024.01.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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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닐 집 속 애호박을 본다. 딴짓을 하던 중 손에서 미끄러져 나간 그것은 쿵 하고 땅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살짝 실금이 간 듯했으나 비닐을 벗겨보니 조각난 살점이 많다. 비닐집에 기대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으나 상처는 이미 커 손써 볼 도리가 없다. 그런데 안타까움보다 후련한 이 기분은 뭔가. 상처가 난 후에야 맛보는 짜릿한 해방감! 생의 끝자락에 찾아온 자유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으로 훨훨 날아갈 것만 같다. 어느새 감정이입이 된 나는 호박이 살아온 생의 한복판으로 훅 걸어 들어간다. 

애호박은 꽃눈 시절을 지나 열매가 되어가면서 많은 상상을 했을 거다. 한낮에는 몸 깊숙한 곳까지 활짝 열어 나긋한 봄볕을 받아들였을 테고 구석구석으로 전해오는 태양의 짜릿함을 지긋이 즐겼겠지. 태양을 품어 얻은 생명이니 그를 닮은 삶을 꿈꾸었으리라. 태양처럼 뜨겁고 강렬한, 단단한 육질을 갖고 싶었을 거고 나이 들어서는 이웃의 노을빛 할아버지 호박처럼 펑퍼짐한 엉덩이로 넓은 집을 짓고도 싶었을 거다. 나비와 벌들이 오다가다 들르면 안락의자가 되어 폭풍 수다에 가세하고 싶기도 했겠다.

몸집이 커지면서 제 몸이 제 것이 아님을 알았을 텐데, 팔을 뻗기도 비좁은 비닐 집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된 숙명이었음을 알고 얼마나 절망했을까. 무엇이 되겠다는 의지는 무모한 일이며, 옴짝달싹도 못하게 하는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음을, 속으로 얼마나 많이 들끓고 난 후에야 받아들였을까. 세상을 향해 손사래 한번 치지 못한 채 정해진 곳으로 발을 뻗고 부동자세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삶의 현장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미리 체념하는 법을 배우며 험난한 파고를 넘어왔을 터, 단정하게 뻗은 폼이 예사롭지 않아 자꾸 마음이 간다. 

그래도 살아야 했으니 온 힘을 다해 수액을 빨아들여 허기를 채웠을 거다. 참 아픈 세월을 잘도 견뎌 날씬한 애호박이 되었다. 자유를 빼앗기고 수려한 용모를 얻었다. 파리도 미끄러질 듯한 매끈한 살결은 부러움의 대상이었겠다. 손발 묶인 채 견뎌낸 빛나는 훈장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영혼을 위로하지는 못했을 거다. 밤이면 가출한 영혼을 찾아 들판을 이리저리 내달렸을 게 뻔하다. 영혼이 빠져나간 자리는 움푹 팬 볼때기처럼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웠을거다. 자기를 부정하고 얻은 가치가 얼마나 가슴 저미는 아픔이었을지. 영광의 순간에 또렷이 그려지는 나의 현재. 남의 옷을 걸친 듯 겉도는 이질감이 절정의 순간마다 찾아와 얼마나 맥 빠지게 했을지….

오래전 여성의 삶도 비닐 집 안의 애호박 같았다. 숨죽여 살아온 지난 세월, 그래도 좋은 시절을 만나 상흔이 옅어져 가는데 안타깝게 요즘 들어 젠더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굵직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도마 위에 오르곤 하지만 그럭저럭 봉합되어왔는데 이번에는 심상찮다. 30대 젊은 남성 정치인이 젠더 갈등을 부추겨 인기를 얻고 있다, 남자가 오히려 억울한 세상이라 말한다. 과도하게 늘어난 여성의 지위가 남성을 소외시킨다며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주장한다. 남녀 모두가 각자의 편에서 서로에게 유리한 새 판을 짜느라 분주하다. 비닐집 애호박처럼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운명을 그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모두에게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그럴듯한 그릇을 갖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싶다. 

남성이 외려 소외감을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지나온 여성의 삶에 견주랴. 생각해 보면 여성은 고장 난 지렛대에 의지해 살아야 했다. 권력을 독점한 남성은 참고 견디는 여성에게 열녀문이라는 얄팍하기 그지없는 훈장을 주고 다독였다. 비닐 집 애호박처럼 다소곳이 죽은 듯 살기를 바랐다. 자유를 담보로 얻은 수려한 용모는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대접받지 못한 영혼이 떠난 화려한 빈집은 허물어질 듯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나조차 주어진 그릇을 탓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혜 베풀 듯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그것에 홀려 미끈한 살결만 어루만졌다. 
남의 생을 사는 듯 불안했으나 아직도 내 안에는 수려한 용모를 포기하지 못하는 구석이 있다. 딸과 종종 충돌하는 것도 오랜 습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런 의식이 원인일 때가 많다. 딸의 혼사를 치르면서 갈등이 두드러졌다. 신부 혼주는 소리 없이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았다. 죽은 듯 있다가 신랑측이 이끄는 대로 따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 겪는 일인데도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본능적으로 찾아들었다. 딸의 의견을 따르자니 뒤통수가 따갑고 내 의식의 체계를 따르자니 딸이 앵돌아앉았다. 예단, 폐백, 예식에 이르기까지 충돌 또 충돌이다.

싱싱 장터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애호박을 만났다. 배에 오동통하니 살이 올랐다. 꼭지에 꾸덕꾸덕 눈물 자국이 있는 걸보니 줄기와 이별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엄마를 떠나 홀로 세상에 던져졌는데 호기심 많은 그것은 금방이라도 살갗을  박차고 터져 나올 기세다. 닿는 손이 튕겨 나갈 정도로 쫀득하고 탱글탱글한 살집. 한눈에도 호박이 걸어온 길이 훤히 보이는 듯하다.

 딸아이를 닮은 것 같아 자꾸 눈이 간다. 딸은 유독 여성에게 주어진 그릇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데 예리하다. 맏며느리 노릇을 당연하게 여기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명절 때마다 시골을 오가면서 나보다 더 목소리를 높였다. 며느리 자리는 여인의 숙명을 강요하는 굴레일 뿐이란다. 그런 길을 걷고 있는 엄마를 안쓰러워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답답해했다.

 살아온 세월을 어찌 뛰어넘을까. 아무리 말려도 살아온 시대를 거스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세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안간힘으로 이해하며 살아야 했다. 부당함을 가슴에 품으면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었기에 주어진 그릇을 순순히 받아안을 수밖에 없었다면 궁색한 변명일까. 수시로 자주 불끈거렸지만, 급발진은 주변을 더욱 혼란케 할 뿐이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엄마는 떠밀리듯 살아왔지만 너는 너의 길을 당당하게 가길 바란다. 주어진 그릇이라고 덥석 잡지 말고 원하는 그릇을 스스로 선택하길 바란다. 아이가 걸어갈 미래가 어떤 그림을 완성할지 궁금하다.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그래도 배가 볼록한 애호박처럼 살아 꿈틀거리지 싶다. 

  단단한 육즙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싱싱한 애호박을 그예시장바구에서 담았다. 마치 딸아이의 미래를 한 아름 안아 든 것처럼 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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