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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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38)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24.03.2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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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서가 마감되기 직전, 나와 이사장은 여러 번 만나 간호대학의 발전방안에 대한 성신의 의지를 확인했고, 그에 필요한 적립금 및 가용한 예비비 등도 여러 번 확답 받았다. 특히 내가 제시한 통합조건은 그 영향을 키우기 위해 간단하게 제시했다.

- 간호대학은 간호학과가 아닌 단과대학으로 그 위상을 유지한다. 

- 단과대학으로서 간호대학만이 사용 가능한 단독건물을 반드시 제공한다.

- 간호대학 교수들의 신분은 그대로 보장하되 각 교수는 조교수 ·조교수, 부교수·부교수, 교수·교수, NMC 당시 교수 직급을 그대로 유지 하여 평형 이동한다.(성신여대 규정에는 전문대 교수는 한 직급을 내려 발령받게 되어있었다.)

- 사무직원은 그들의 경력에 따라 행정직에 발령한다.

- 간호교육의 특성상 임상 실습과 기본간호학 실습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실습에 필요한 여건 형성에 적극 노력한다.

- 통폐합된 동문들의 화합을 위해 성신 교정 내에 동문회 공간을 마련한다.

위의 내용을 골자로 한 합의서를 작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후 복지부와 교육부 협조하에 성신여대가 통폐합 대학 여건을 심사하는 과정을 거쳤다. 드디어 11월에 성신과의 통폐합 승인이 났다. 가슴이 벅찼다. 2005년 다음 해 예산을 없애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었다는 말을 전재희 의원으로부터 들었을 때의 절망감이 이제는 NMC가 4년제 간호대학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희망과 설렘으로 바뀌었다. 

우리 대학이 문을 닫게 되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정말 긴 터널을 통과하여 밝은 빛을 보는 기분이었다. 정말 몸이 부서질 듯 최선을 다했고 드디어 해냈다. 법도 규정도 없어 절대 불가능 하다고 했던 국립과 사립대 간의 통폐합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학장이 뭐길래

2004년 내 학장 발령 건이 청와대 대통령 임명 과정에서 아무 이유 없이 거부된 건이 A 교수와 연관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로 오랫동안 학교 구성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열병을 앓는 듯했다. 그 일로 내가 학장을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6년 학교 예산 및 신입생 모집 중단 소식까지 겹치면서 학교 설립 이래 최악의 상황이 닥쳤다. 그런 혼란과 진통 속에서도 학교는 살길을 찾아야 했다. 나는 김 학장 이하 교수들에게 학교 예산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은 교수들 외에는 절대로 외부로 말이 새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학생들은 좌절과 분노로 시끄러워질 것이고 동문은 자존감 상실로 절망감만 생길 것이며, 우리가 통합 대상교를 찾아 협상할 때에도 불리한 약점으로 작용할 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어수선하고 혼란한 분위기였지만 성신과의 협상은 거스를 수 없는 나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럴 때일수록 부끄럽지 않게 언행일치의 품격을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리더의 감정 기복은 구성원들에게 곧 전염되어 정서적 피해를 줄 수도 있기에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열정의 다른 이름인 성실과 인내심으로 견디고자 했다. 그러나 때로는 몸이 부서질 듯 혼자 힘든 순간도 많았다.

교육부와 복지부를 상대로 사상 초유의 국립대와 사립대 간 통폐합 허가를 받아내야 하는 절박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성신을 상대로 대학 간 통폐합을 위한 상호 조건, 절차 등 피 말리는 협상과 함께 NMC 학교의 해산절차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수 없는 긴장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내부에서 꾸준히 흘러나오는 산업대와의 통합문제였다. 극히 일부 동문은 산업대 통합을 주장하며 마치 내가 무슨 꿍꿍이라도 있어서 성신과의 통합을 일관되게 추진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산업대를 끝까지 주장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현직 학장이라 내가 받는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성격에 이러한 내부 사정을 외부 동문에게 알릴 수도 없고 그야말로 벙어리냉가슴이었다. 2005년 2월 에 학장에 임명되어, 2005년 말에 제기된 폐교 문제로 임기 4년 중 2년 밖에 채우지 못하고 성신과 통합되는 학장의 아쉬움을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한편에서 마치 내가 학장 하려고 성신에 가려고 한다는 메아리로 돌아올 때는 정말 화가 났다.

학장의 산업대에 대한 집념이 워낙 강해서 교육부가 성신 이사장에게 학장 선임 문제에 대한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이사장은 간호대학 학장 문제는 공정하게 간호대학 교수들이 선출한 사람으로 발령내겠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학장이 주관하여 성신여대 간호대학장 선출을 위한 투표를 한 결과 또다시 교수 전원이 나를 학장으로 선출했다. 100%교수 표를 받아 학장으로 선출되었으나 기쁘다기보다는 마음이 무거웠다. 학장 자리 때문에 학교의 명운이 흔들렸고 그 위기로 모두가 벼랑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던 아픈 기억 때문이다. A 교수의 학장에 대한 잘못된 집념은 나뿐만 아니라 학교를 수렁에 빠뜨렸고, 위기는 그 자체로 논리와 관성을 갖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길로 질주했다. 또 그는 본인 스스로 불러온 화로 인하여 고립되었고, 끝내 교수들과의 성신행에 동행할 수 없었다. 나는 A 교수와 다툴 마음조차 없어 아예 관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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