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천국이 있다. 겨울 햇볕이 따스한 날 저수지 은물결에 마음을 담그고 맑은 바람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여기가 내 작은 낙원이 된다. 겨울 저수지는 여름것 모양 칙칙하지가 않다. 한결 신선해진 물빛에 잔잔한 물결은 자연이 스스로 몸을 정갈하게 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겨울 저수지를 통째로 차지하여 즐기는 녀석들이 있다. 물오리들이다. 녀석들은 살갗에 닿는 겨울바람이 날을 세워갈수록 신이 난다. 물 위에 곧추서서 날개를 퍼덕이는 놈도 있고 어느 녀석은 괜히 신이 나서 곱지도 않은 목청을 돋워 꽥꽥 소리를 지은다.
가수가 저런 목소리라면 일찌감치 집에서 애나 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 제멋에 겨운 것이니…. 기러기들이 몸 빛깔만은 고운 청둥오리들이 대부분이다. 그 자태에 목소리만 갖추었던들.
얼음이 얼기 전 요즘이 기러기들이 가장 신이 날 때이다.
아침 일찍 저수지 둘레 길을 걷다 보면 퍼렇게 추워 보이는 물에 정말로 신들이 난다. 어찌 저리 추운 물에 신명이 날까. 물오리들의 발을 보면 찬물에 얼어서인지 그 색깔이 완전 새빨갛다. 조물주는 다 우리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방법으로 만물이 살아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러면서 혹독한 시련도 함께 주었다. 해마다 그런 건 아니지만 겨울이 깊어져 저수지가 완전 결빙을 하면 물오리들도 이 낙원을 떠날 수밖에 없다. 어디 얼지 않은 곳으로 방을 빼 힘든 이사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세상이 온통 은빛으로 변해 있으면 산책의 묘미가 최고조에 이른다. 미끄럼에 자신 없는 사람들은 쉽게 못 나오지만 난 이때도 무조건 그곳으로 간다. 눈이 펑펑 쏟아지면 더욱 좋다. 하늘에 꽉 차서 떨어지는 눈발을 쳐다보노라면 눈이 내리는 게 아니라 내가 눈 속으로 둥둥 빨려 올라가는 느낌이다.
이때는 내가 완전 열 살 소년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쏟아지는 눈발을 온몸에 받으며 저수지 둘레 길을 걷는 기분, 그걸 어떻게 표현을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문학공원이 환희에 가득 찰 때는 봄이다. 이른 봄 황홀한 볕에 벚꽃이 개화를 시작하고 세상이 춘정으로 붕붕 뜨기 시작하면 역시 봄바람이 잔 뜩 든 사람들이 저수지 벚꽃나무 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온통 벚꽃 잎처럼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이때는 세상이 온통 꽃빛이다.
유명시인들 시비가 곳곳에 세워진 문학공원 언덕을 오르내리면 봄볕은 한결 밝아지고 살갗에 닿는 맑은 바람은 가슴속 시심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난 이곳에서 내가 쓰는 글을 많이 데려왔다. 사람은 분위기를 탄다.
이런 날 공원을 돌며 시심이 일지 않는다면 목석이 아닐까. 멋진 시구라도 생각이 나면 얼른 휴대폰에 메모를 한다. 안 그러면 몇 발짝 띠다 보면 시심은 금방 증발해버리고 다시 붙들어 놀 수가 없다. 집에 오면 바로 시가 하나 탄생한다. 문학공원이 제 임무를 톡톡히 하는 셈이다. 공원 주인이 정지용 시인인데 어련할까.
한여름 햇볕이 끓을 때는 낮 동안 산책이 어려워진다. 이런 땐 아침 일찍 또는 저녁 무렵 더위가 좀 수그러들 때가 좋다. 굳이 극기 훈련을 하는게 아니라면 한낮 공원 돌기는 삼가야 한다. 그리고 급할 것도 없다. 느림의 여유를 맘껏 즐겨야 한다.
나이도 나이지만 뭐 그리 급히 걸을 필요가 전혀 없다. 젊은이들은 굉장히 빠른 걸음으로 두 팔을 힘껏 흔들며 걷는다. 운동에 목적이 있으니까 그래야 한다. 숨이 차게 걸어야 운동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이엔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바삐 살아온 인생 이젠 좀 천천히 갈 필요가 있다. 이것저것, 여기저기, 이 생각 저 생각 해찰할 거하고 속도를 늦춰 천천히 걸으며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산책도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맘에 내키면 하고 귀찮으면 안 나가고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사람이 게으름을 피우면 끝이 없다. 젊어 직장에 나가거나 생활에 쫓기다 보면 실은 산책이 사치로 생각될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시간에 틈이 생긴다면 꼭 이런 여유로움에 젖어볼 필요가 있다. 난 50대부터 걷기를 생활화했다. 공원에 나가보면 토, 일요일엔 젊은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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