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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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릅나무
  • 손수자 수필가
  • 승인 2024.12.0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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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속으로 가지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표리부동’하다고 한다. 표리부동은 대개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사자성어인데, 나무에도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다릅나무’가 있어 흥미롭다.

어성전 산림교육장에서 숲 해설가 한 분이 톱으로 나뭇가지를 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하는 일이 궁금하여 다가가니 지름이 5cm쯤 되는 나뭇가지를 얇게 토막 내고 있다. 유치원생들이 숲 체험하러 와서 목걸이를 만들 때 사용할 자료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나무 이름이 ‘다릅나무’라고 했다. 다릅나무는 겉껍질을 벗기면 안 껍질은 황백색, 속 목재는 짙은 갈색으로 속과 겉이 다른 나무라 하여 ‘다른 나무’ 가 ‘다릅나무’로 변천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일부 지방에서는 물푸레나무와 비슷하다 하여 ‘개물푸레나무’라고 부르고 농촌에서 송아지가 자라면 코를 뚫을 때 사용하여 ‘쇠 코둘개나무’라고도 부른다. 그밖에 개박달나무, 소허래나무, 먹감나무 등으로 불리는 곳도 있다고 한다.

다릅나무처럼 나무 고유의 습성이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진 나무가 어성전 숲에 많다. 나뭇가지가 층을 이루며 자란다고 하여 층층나무, 잎이나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생강나무, 잎과 어린 가지를 물에 비비면 푸른 색소가 나온다는 물푸레나무,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열매 머리가 회색으로 반질반질해서 마치 스님이 떼로 몰려있는 모습이어서 떼중나무, 떼중나무는 나중에 때죽나무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열매의 모양이 농기구의 가래를 닮았다 하여 가래나무라고 하는 나무 등이다. 그 이름들이 그럴싸하여 재미있다.

다릅나무는 조금 깊은 산 우거진 숲속에서 자라는 나무라서 ‘숲속의 은둔자’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지고 있는 콩과식물로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자라는 낙엽수다.

키가 20여m, 지름이 두세 아름에 이르기도 하는 큰 나무로 자란다고 한다. 아까시나무 잎과 너무 닮아 언뜻 보아서는 구분이 어렵지만, 작은 잎은 타원형으로 끝이 갑자기 짧게 뾰족해지는 것이 아까시나무 잎의 끝 모양과 차이점이다. 꽃은 원뿔 모양으로 위로 향하며 7월에 하양 꽃들이 모여서 핀다.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동글납작하게 토막 난 다릅나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보니 베이지색 테두리 안에 자리 잡은 진한 갈색톤 단면이 멋스럽다. 여기에 애써 그림 그리지 않고 구멍을 뚫어 줄을 달아도 자연미가 물씬 풍기는 목걸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릅나무 도막이 탐났다. 여름 방학에 올 손녀 생각이 나서다. 톱질하느라 얼굴에 땀방울이 맺힌 숲 해설가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니 다릅나무 토막을 좀 달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조심스레 몇 개를 얻고자 말문을 열었다. 얻으려는 내 표정이 간절해서일까. 그가 힐긋 쳐다보더니 나에게 한 줌 집어 건네주었다. 예기치 않은 수확이다.

다릅나무는 겉과 속의 색깔과 명암의 차이가 명확하여 동물 형상이나 장식용 나무 그릇을 만드는 재료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속 목재는 잘 썩지 않는 물질이 충분히 들어 있어 보존성이 좋아서 가구 제작용 목재, 여러 가지 운동구 등 다양하게 쓰인다.

다릅나무의 껍질은 적갈색으로 세로로 조금씩 말려 있으면서 갈라지지 않고 매끄럽다. 나무가 자라면서 수피의 때를 벗는 듯하다. 다릅나무를 찾는 방법은 껍질의 특징을 보고 구분하는 게 가장 쉽다.

짙은 갈색의 속 목재를 황백색의 안 껍질이 감싸고 있는 모양은 외유내강, 겉으로는 부드럽고 순해 보이나 속은 곧고 굳센 사람을 비유하기에 좋은 나무라고 여겨진다. 그러고 보니 표리부동의 뜻도 그리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다릅나무 껍질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거칠지만 속으로 가지는 생각이 선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

어느 분이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면서 양파 같은 여인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 의미인즉, 양파는 야무지고 한 겹 한 겹 다 베낄 때까지 같은 모양이듯 변함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은 내 속에 얼마나 복잡한 미로를 지니고 있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런 내가 양파에 비유되고 보니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갸우뚱거려졌다. 속까지 다 벗겨 보아도 겉과 속이 뻔한 양파. 나는 아무래도 양파보다는 다릅나무 같은 사람이 아닐지. 안 껍질 속에 또 하나의 뜰을 만들어 나이테를 곱게 가꾸는 꿍꿍이, 훗날에 내 안의 뜰이 겉모습에 비해 예뻤노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 모를 일 아닌가. 다릅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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