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 밥 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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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밥 문나
  • 박미련 작가
  • 승인 2024.12.1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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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문나? 밥 묵어야재”

구순을 바라보는 엄마는 쓴 약을 오랫동안 먹어서인지 입안이 온통 헐었다. 나만 가면 아파서 인상을 쓰면서도 입에 모터를 단 것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신다. 먹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재차 말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조금 있으니 병원 식사가 나왔다. 전에 없이 눈을 빛내시더니 여벌 수저를 챙기기 시작한다. “야야 밥 묵자 기냥 같이 한 술 뜨자이” 불룩 나온 남편의 배를 툭툭 쳐 보이며 엄마나 드시라고 재우쳐도 소용이 없다. 그예 사위와 딸 입에 밥이 들어가는 걸 보고서야 흡족한 얼굴로 당신도 수저를 드신다.

엄마가 밥에 집착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막내인 나는 엄마 치맛자락만 붙들고 졸졸 따라다니는 엄마 바보였다. 어쩌다 깜박 잠이 든 사이 나 몰래 마실이라도 가면 집안은 온통 난리가 났다.

사라진 엄마의 흔적을 잠결에서도 느낀 걸까. 귀신같이 일어나 그 밤에 동네가 떠나가랴 울어댔으니 어린 것이 동네 어르신들의 단잠을 홀랑 다 깨워놓았겠다.

그런 엄마 바보가 자라 고등학생이 되면서 대도시로 나갔다. 엄마와 떨어져 홀로 세상에 나선 막내가 얼마나 걱정스러웠을까. 전화만 걸면 첫마디는 늘 한결같았다. “밥 문나? 거르면 큰일 난다. 이것저것 챙겨놨으니 집에 함 왔다 가라~” 밥 얘기 외엔 딸한테 궁금한 게 눈곱만큼도 없는 모양이다.

얄미운 친구 흉도 보고 싶고 새벽잠을 반납하고 공부했는데 오르지 않는 성적 땜에 고민하면 위로해주는 엄마이기를 바랐건만 엄마의 밥 타령에 밀려 다른 얘기는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것 같다. “또 밥 얘기야? 다른 얘기 좀 하지 제발?” 전화를 걸으면 여지없이 나오는 엄마의 밥 타령에 보고 싶던 마음조차 싸늘히 식어버리곤 했다. “알았다니까 그만 끊을께” 기어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죄진 듯한 기분까지 덤으로 감당해야 했다. 알았다는 말은 엄마의 밥 얘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으니까.

그런데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세월이 흘러 내가 엄마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느라 딸아이는 오래 전부터 서울에서 혼자 생활한다. 넉넉지 않은 생활비로 당차게 살아주는 딸아이가 그저 고맙다. 공부하랴 밥해 먹으랴 얼마나 힘이 들까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올라가 따뜻한 엄마표 밥을 지어주고 싶다.

딸과는 전화로 자주 만나는데 언제부터인가 엄마인 나도 내 엄마처럼 “밥 먹었니? 뭐 좀 먹었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끼니가 궁금하다. 든든히 밥을 챙겨 먹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우등상 탄다는 소식보다 더 기쁘다.
안심은 행복감을 선물한다. 나의 하루도 딸아이의 건강한 하루를 확인하고 나면 활기가 넘친다.

아직도 혼자 사는 딸아이가 애면글면 걱정이다. 서울살이가 만만치 않을 텐데, 생각하면 짠하다. 세상이 편리해졌다고는 하나 바깥 밥은 빈 공기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고봉밥을 먹어도 허기가 지던 때를 딸애가 똑같이 걷고 있다.

엄마를 떠나면 먹거리가 문제긴 문제다. 공부는 깨달은 만큼 결과가 있을 것이고 친구도 마음 준만큼 곁을 지켜주는데 먹거리는 선택의 폭이 참으로 다양하다. 한 끼 식사가 되는 빵 부스러기부터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곁들인 따뜻한 집밥에 이르기까지, 게다가 젊은이들은 먹거리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적성에 맞는 일거리 찾기, 배우자를 만나는 일은 굶어가면서라도 해결해야 하는 젊은 시절의 과제이지 않은가 말이다.

늘 뒷전으로 밀리는 자식의 먹거리 고민이 그래서 엄마의 몫이 되어버렸다. 더욱이 딸아이는 어릴 적부터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밥에 집착하는 건 엄마와 나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집 나간 식구 몫으로 고슬고슬한 쌀밥을 골라 부뚜막에 올려 두었다. 어디서 굶지나 않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밥은 새 밥을 풀 때까지 넉넉하게 부뚜막을 지키었다. 우리 집에도 그랬다.

월남전에 참전한 큰 오빠가 무사 귀환할 때까지 고봉밥 한 그릇은 부뚜막 그림을 완성하는데 화룡점정 같았다. “없는 사람 챙길 게 뭐야” 보리밥 먹기 싫었던 철부지 어린 나는 흰쌀이 훨씬 많은 오빠 밥을 자주 탐했다. 엄마는 밥을 지어 올린 것이 아니라 오빠의 안녕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을 텐데, 밥만 먹어도 목숨은 부지 할 수 있으니, 최악의 상황은 면하기를 바라는 맘으로 고봉밥을 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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