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원 최초 내부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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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 최초 내부 승진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12.1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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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시리즈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미 정해진 정부의 감사를 코앞에 두고 그 부당함을 말하러 항의성 방문을 결심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평가원이 시작부터 이렇게 부당하고 불합리하게 휘둘리는 것을 그냥 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풀어야겠다고 생 각했다.
 
나는 다음 날 교육부로 어려운 발걸음을 옮겼다. 성신여대로 간 후 오랜만에 만난 P 실장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두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설명을 했다. 지정심사에서 4대 기본교육여건은 교육부만이 가진 데이터이기 때문에 교육부 공문에도 그 부문은 교육부의 심사영역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 사무관이 이 부문 심사를 무조건 거부하며 평가원이 알아서 다 하라고 큰 소리로 직원에게 명령하다시피 한 것은 직무유기일 뿐 아니라 공무원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갑질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느닷없는 감사를 내세워 산하 단체 길들이기를 시도한 L 사무관의 행태는 오기의 산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평가원이 받게 되었다는 입장을 정중하게 설명했다. NMC 학장시절부터 내 성격을 알고 지내던 P 실장님은 내 말을 경청한 후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듯한 표정으로 잘 알겠다며 이 건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정책국장실에도 들러 같은 내용을 설명했다. 국장 역시도 내 말을 경청한 다음 죄송하다며 잘 처리하겠다고 엘리베이터까지 나와 전송했다. 나는 힘든 걸음을 했지만 실·국장을 만나 실상을 소상하게 얘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돌아올 때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다음날이 정해진 감사날이었다. 박 부장이 내 방으로 급하게 들어왔다. “원장님, 뭔가 이상해요. L 사무관과 주무관이 9시 정각에 감사장에 도착했는데 그때 교육부로부터 무슨 전화를 받더니 허겁지겁 교육부에 다녀온다고 나갔는데 지금까지 오지 않아 주무관 혼자 편치 않은 표정으로 감사를 하고 있어요.”

나는 교육부에서 진상을 파악하고는 무슨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L 사무관이 평가원의 일을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면 실장 이 감사까지 내보낼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결국 L 사무관은 온종일 나타나지 않았고 주무관은 혼자 감사를 마쳤다.

주무관은 그날 작성한 감사보고서에 원장 서명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부당한 감사보고서에 서명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잘랐다. 그는 내게 감사를 나왔으니 보고서는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 자기 입장을 헤아려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주무관의 입장을 배려해서 사인은 해주되 보고서 중에서 불합리한 항목은 삭제하고 지정심사비 전용건은 이번 감사로 종료한다는 문구를 첨가하라는 조건을 걸었다. 

3일 예정이던 감사는 그렇게 하루만에 싱겁게 종료되었다. 그 후 부당하게 기획된 평가원 감사건과 관련된 사무관과 주무관은 모두 인사 조치가 되었고 새로 바뀐 사무관과 소통하여 지정심사는 순조로이 진행할 수 있었다.

어려운 발걸음이었지만 교육부 감사의 부당성을 어필해서 얻은 결과로 평가원을 지켜낼 수 있었던 첫 보람이었다.

인사와 행정의 
독립성 확보


재정자립과 함께 인사 및 결재시스템의 독립성 또한 남겨진 과제였다. 내가 원장으로 취임했을 때 사무처장 자리가 공석이었는데, 얼마 후 간호계 모 인사로부터 사무처장을 추천할테니 채용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게 추천받은 후보의 나이가 60대 중반이었다. 평가원에 근무 중인 직원들 대부분이 30~40대인 것을 생각한다면, 소통이나 화합이 원활할 것 같지 않았다. 여러 가지를 감안해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몇 개월 후 또다시 같은 인사가 같은 사람을 재추천했다.

그 사람이 복지부 출신이라 행정에는 능하니 원장 업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를 설득했지만 나와는 가까운 모 인사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완곡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평가원이 아직은 처장을 채용하여 그렇게 많은 연봉을 지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때로는 행정처리가 힘들기는 하지만 내가 처장 업무까지 맡아서 하고 있어요.”라고 얼버무려 버렸다.

그런 채로 1년 반 세월이 지나면서 굳이 외부 사람을 처장으로 채용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우리 평가원 부장들도 박사학위 소지자였고, 평가원 업무의 전문성으로 봐서도 외부 사람보다 훨씬 유능 하고 전문성을 갖췄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참에 내부승진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어 결심했다. 

나는 이사장에게 지금까지 처장직을 외부에서 찾는 관행을 내부 승진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렇게 하여 박 부장을 처장으로 승진 발령냈다. 우리 평가원 최초의 처장 내부승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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