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분단의 최고 희생양이었던 정지용.
그 희생 아래 해방된 조국의 터전에 절실히 요구되었던 민족문학에 대한 지표 설정에 날카로운 대립의 칼날만 휘두르던 한국문학사와 비평.
이제 아리던 정지용의 상처를 봉합하려한다. 아니, 이 상처의 치유는 정지용만이 갖는 향유가 아니고 옥천군과 대한민국이 동시에 누리는 평화의 징조이다. 이 평화를 위해 정지용 문학을 매개로한 학술교류에 전 세계인이 환호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에 “남북한 정지용 학술교류”의 당위성에 대하여 정지용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그를 연구하는 학자적 입장으로 혹은 그의 고향 사람인 옥천인이라는 자격으로 눌언하고자 한다.
첫째, 문학사적 측면이다.
남북한 문학의 좌우익에 대한 불신과 어용을 초래한 일본 군국주의의 폭력. 그것에 압살 당하였던 당시 모든 사회·문화적 영역의 이념적 갈등. 그 갈등으로 인한 문학인과 그들의 작품 그리고 남북한의 정통 한국문학사 정립과 오점해소에 있다.
1948년 12월 공포된 국가보안법에 의거하여 1949년 6월 국민보도연맹이 결성된다.
정지용은 조선문학가 동맹에 발을 들여놓았던 이력 때문에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좌우익의 노선에서 규정하자면 정지용은 김구의 민족통일 지상주의 노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경향신문』 칼럼 「여적」에서 정치현실을 비판하기도 하였지만 『산문』(동지사, 1949.)에 발표한 「남북회담에 그치랴」를 살펴보면 “민족통일 지상주의에 가깝”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김구가 안두희에게 피살되고, 정지용의 “정치현실에 대한 혐오감은 극도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 절박한 상황을 정지용은 “명예회복의 차원에서 좌파청산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보도연맹 가입 후 정지용은 「상허에게」라는 이태준에 대한 경고문을 발표하고, 사회를 보기도 하며, 양주동에 이어 보도연맹 문화실장으로 취임하기도 한다. 정지용은 『국도신문』에 「남해오월점철」(5월 7일-6월 28일)을 연재한다.
이를 두고 “보도연맹의 선무활동이라 하고 그를 심정적 좌파라 추론하는 젊은 학자도 있으나 동조하지는 않”는다고 양왕용(『한국현대시와 디아스포라』, 작가마을, 2014, 41-42면.)은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문교부는 정지용을 좌파로 인정, 중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던 그의 작품 10편을 삭제하고 만다. 즉 정지용의 작품은 인간 정지용 혹은 문학인 정지용보다 먼저 숙청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민족분단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둘째, 언어학적 측면이다.
정지용 문학 언어를 통하여 남북교류의 가장 기본적 요소인 언어를 세련되고 아름답게 소통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로 외래어, 외국어, 한자어를 많이 쓰는 남한 언어와 규정에 맞춘 고유어 형태로 변화시킨 일상 언어를 주로 쓴다는 북한 언어를 포용·정리하여야 한다. 정지용 문학은 이러한 문학 언어와 일상 언어를 포용·정리하는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의 일종으로 작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하나의 심미적 우주 혹은 현실 공간에 열려 있는 의미체이다. 이러한 문학에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토속어 혹은 문학어의 정체성 소멸과 변화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남북한은 언어의 가장 큰 역할인 의사소통의 단절과 어려움을 겪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치·사회적 조건에 의하여 언어의 순수성과 보편성이 유지되어야 하나 의사소통이 단절된 남북언어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한은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제정된 이래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사용한다. 북한은 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살려 평양말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공용어를 확립한 문화어를 쓴다. 문화어는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민족어, 혁명성, 주체적 언어사상 등을 강조한다. 물론 문화어는 고유어나 방언의 수용에 적극적이라는 평이다. 이러한 “표준어”와 “문화어”는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를 초래함과 동시에 민족적 문제로 파급·확산 되었다.
현재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작업의 필요성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정지용 문학 언어가 그 해결의 단초역할을 해내야만 한다.
이외에도 정치·경제적인 측면의 필요성이 대두될 터인데 이는 필자와는 ‘풍마우불상급(風馬牛不相及)’인지라 이만 그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