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紅松, Korean Pine)
상태바
잣나무(紅松, Korean Pine)
  • 정홍용 안남면 화인산림욕장 대표
  • 승인 2018.12.20 14: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홍용 안남면 화인산림욕장 대표

학명을 보면 ‘Pinus Koraiensis’로 되어 있어 어딘가 한국 냄새가 나는 듯한데, 실은 원산지가 한국이므로 영어로 한국솔(Korean pine) 이라고 한다.
분포는 한국, 중국 북동부 우수리강 지역으로 성목은 30m까지 자라며 지름이 1m가 넘는 것도 있다.

나당(羅唐) 연합군이 백제를 쓰러트린 후에 신라에서 당나라로 가는 사절들은 한결같이 잣을 귀중히 여겨 귀로에 갖고 갔다고 하여 잣나무를 중국에서는 신라송(新羅松) 이라고 불렸단다.
잣나무로 노아의 방주(Noah's Ark)를 만들어 인류를 구원한 역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신은 노아에게 명하여 머지않아 올 대홍수를 대비하여 정확한 규격과 제작방법까지 제시하면서 방주를 만들도록 했다.

노아는 세 아들과 함께 신의 명대로 방주를 만들어 자기 가족을 비롯한 생물의 암수 한 쌍과 음식을 방주(方舟)에 싣고 40주야로 내린 홍수 속에서 견디어 낸 일은 성서에 익숙치않은 일반인들도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다.

여기서 잣나무가 쓰였다는 것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잣나무가 없는 곳으로 아마도 잣나무와 흡사한 전나무의 오역(誤譯)으로 생각된다.

송무백열(松茂栢悅)이란 고사성어가 있는데 이를 직역하면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기뻐한다’이나  실은 잣나무의 너그러움과 의연함을 뜻하여 친구가 잘 되고 출세함을 축복할 때 인용하기도 한다.

잣은 불로장생의 신선(神仙)식품으로 풍부한 영양과 특유의 고소한 맛은 누구나 좋아하여 모두에게 사랑 받고 있는 소중한 식품이다.

수정과에 잣을 뛰우는 것은 빈혈을 막는 효과가 있으므로 궁합이 잘 맞는 한 쌍의 콤비인 것이다.

잣에는 탄수화물, 각종 비타민류, 지방, 단백질까지 골고루 함유된 완전식품이다. 그러므로 옛부터 병들어 누우면 제일 먼저 영양이 풍부한 잣죽을 끓여다 기운을 차리게 할 정도로 약처럼 귀한 대접을 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가평군에 50,000 그루가 심겨져 군락이 형성되어, 지금은 ‘잣’하면 가평을 연상하게 되었다.

가평군은 전체 산림면적의 30%를 잣나무로 조성하여 경제림으로도 성공한 지역 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 잣 생산량의 60%가 가평에서 생산 되므로 산림청은  ‘가평 잣’ ‘영동 곶감’을 지리적 표시 등록 임산물로 공고하여 지적재산권으로 법적 보호를 받게 하였다.

서울에 접근성이 좋고 산수가 수려하여 별장지가 많은 가평에 히노끼 시공을 위해 자주 가게 되어 산주들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들의 공통된 얘기는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키고 인건비 상승에 대항하기 위하여 원숭이를 훈련 시켜 잣송이를 따게 했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아 그만 두었다고 했다. 또한  산림청 소속 헬기의 지원을 받아 프로펠라 회전바람을 이용 했지만 이것마저 신통치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베터란 전문 인력에 하청을 맡기고 있다고 했다.

목재는 건축용과 가구재로 쓰이지만 워낙 량이 적어 활용도가 극히 미미하다. 태국 방콕에서 710km  남쪽에 떨어져 있으며, 태국에서 3번째로 큰 코사무이(Ko Samui)섬이 있다.
아름다운 해안과 태국 거부들의 별장이 많고, 요즘은 젊은이들의 ‘풀 문 파티(Full Moon Party=대보름 파티)’로 유명한데다 질 좋은 고무나무와 코코넛 야자 농장이 많아 2005년에 처음 방문했다.

농장주는 한국에서 왔다니 한국말을 잘 하는 직원이 있다면서 아주 반기며 소개해 주었다. 다름 아닌 그가 바로 가평까지 와서 원숭이로 잣을 땄던  장본인 일행 중 한명이었다. 어둔한 그의 한국말은 알아듣기 힘들어 몇 번 되물었더니 농장주가 보다 못해 영어로 자세히 통역해 주어 의문이 풀렸다. 원숭이가 잣송이를 따기 위해 가지를 잡아당길 때에 원숭이의 커다란 눈을 잣솔이 찌르므로 원숭이가 기피 했다고 했다.

호주 퍼스(Perth) 근교에서 한솔회사가 조성한 방대한 조림지를 견학 후, 기하학적이고 모범 계획도시로 유명한 수도인 캔버라(Canberra)를 방문 했다.
울창한 숲으로 둘레 싸인 고즈넉한 곳이 마치 알라스카의  앵커리지(Anchorage)에 온 기분 이었다.

전쟁 기념관이 있어 들어가 보니 1.2차 대전은 물론 한국전쟁, PNG(파푸아 뉴기니아) 분쟁, 월남전 등 그들이 참전한 전투기록을 자세하고 광범위하게 전시해 놓았다. 한국전쟁 중 영연방군(英聯邦軍)이 분투하여 중공군의 서울 입성을 위한 경춘가도를 차단한 기록이 많은 자료와 사진에 자세한 설명을 해 놓아 아주 알기 쉬웠다. 무려 두 시간 이상 보고 있으니까 여직원이 다가와 이렇게 오랫동안 보는 동양인은 처음이라며 차 한자 하고 쉬었다 보란다.

한국인은 가물에 콩나 듯 오지만 거의가 휙 둘레 보고 5분 이내로 나가므로 아쉬움이 많았다면서, 가평전투에서 호주군이 94명이나 사상자가 발생하여 이는 호주 역사상 단일 전투에서 가평전투가 가장  큰 희생을 치른 곳이라면서 필자의 손을 살며시 잡아 주며 안타까워했다.

가평전투 사진 밑에는 한국에서 갖고 온 잣송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잣송이는 실종된 자기 남편이 어디에서 실종 됐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며 연로한 한 미망인은 매일 잣송이를 보러왔는데 수년전에 돌아가셔서 이제 잣송이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울먹였다. 

그녀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관내에서 홀로 오랫동안 관람해 주었다고 연신 사의를 표하며 떠나는 필자에게 ‘Please! do not forget battle of Gapyong(부디! 가평전투를 잊지 말아 주세요)로 작별인사를 대신해 주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