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노마드 서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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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노마드 서도호
  • 김명순 약사
  • 승인 2020.01.2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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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약사

낯선 외국의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한옥을, 그것도 하늘에서 떨어져 다리에 불시착한 듯 위태롭게 박혀있는 한옥을 발견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질적이고 생경한 모습에 누구든지 조형물임을 바로 인식하겠지만, 그래도 놀라움·설렘·뿌듯함 그 어디쯤의 감정이 들지 않을까? 얼마 전까지 런던 리버풀스트리트역 근처 거리에선 그런 경험이 가능했다고 한다. 한옥의 기와지붕과 문설주까지 섬세하게 사실 그대로 재현한 그 조형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설치미술가 서도호(58)의 작품 <Bridging Home, London>이다. 이 작품은 이주(移住)의 역사와 공적·사적 공간의 성찰이 담긴 것으로, 공공예술 전문기관 UAP가 2018년에 선정한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공공미술 12건 중 하나이다. 보통은 이런 작품의 의미를 이질적인 문화 간의 충돌로 보기 마련인데, 작가는 ‘부드러운 착륙’이라고 설명한다. 작품 <별똥별>의 불안정했던 초기 이방인이 세월이 흘러 이젠 외국에 안착했다는 의미일까?

전시회 관람 후 시간이 흘러도 그 전시를 잊지 못하는 경우는 참 드물다. 그런데 2012년 리움에서 열렸던 그의 전시회 [집속의 집]은 장기 기억에 저장됐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 중 <별똥별>(2008~2011)은 한옥 한 채가 하늘에서 낙하산을 달고 추락해 뉴욕의 아파트에 기우뚱하게 박혀있는 모습의 작품이다. 아파트 내외부의 모든 것들이 미니어처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운데, 한옥과 충돌해 파괴된 부분이 환상적이지만 사실적 묘사의 정점을 이룬다. 한편 동양화 전공(졸업 후 미국 예일대 조소전공) 덕분인지 ‘집 시리즈’의 소재로 쓴 반투명 천의 색감이 남달랐고, 실물 크기로 제작된 작품들은 신선하고 경이로웠다. 하늘하늘한 천으로 딱딱하고 차가운, 집을 이루는 기와·문창살·세면대·가전제품 등을 실물 그대로인 듯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재현해 그 교집합을 조화롭게 창조해낸 작가의 역량에 압도됐다. 더구나 작품 내부까지 관람할 수 있게 만들어, 사적이지만 충분히 공감되는 몽환적인 공간 안에서 관람객 각자의 얘기를 소환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사적 공간 작품이 공적 공간으로 재창조되는 획기적인 전시회로 각인되었던 것이다.

개인과 군중의 관계에 천착하는 작품 중, 군번표 7만개를 연결해 만든 갑옷 <섬/원(Some/One)>과 모든 인종·성별을 포괄한 작은 인물상들(18만개)이 유리판을 팔로 받치고 있는 <Floor>(유리판 위를 걷는 관람객이 결국 공통된 감정을 느끼게 되는 듯한)는,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와 오버랩 된다. 톨스토이가 그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하나하나 소중한 개인이 집단 속에서 익명으로 존재할 때, 경험할 수 있는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서도호가 조형물에 녹여낸 느낌이다.

수많은 그의 작품들은 현대의 난해한 작품과는 좀 다르다. 작가의 사견을 관람객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공감 가능한 세계로 초대한다. 그래서일까? 2018년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열린 개인전 [서도호: 집 가까이서]를 무려 112만3천명이 관람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본 미술관 전시'로 집계(영국 미술전문매체 아트뉴스페이퍼)됐을 정도이다. 또한 백남준․이우환을 잇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평가되며 ’2013년 올해의 혁신가상(월스트리트 저널)‘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199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데뷔무대를 가진 후, 리만머핀 화랑을 통해 외국에 소개되어 글로벌 노마드라 지칭될 정도로, 세계를 돌며 전시하고 ’함녕전 프로젝트‘ 같은 다양한 예술 활동에 참여하며 꾸준히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한국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전 세계 관람객의 공감을 이끈 그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최근엔 영화 제작자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고 한다. 톨스토이에 의하면 “예술가의 목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수많은 양상들을 펼쳐내는 삶 그 자체를 사랑할 줄 알게 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도호는 또 어떤 작업을 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고, 우리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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