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일본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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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의 일본 신사
  • 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 승인 2020.02.0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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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일제 때 9개 면에 신사 건립 일왕에 충성, 신사참배 강요
조선 총독부는 1938년부터 매월 1일을 ‘애국일로 지정하여 한국인과 학생들에게 ‘신사참배’와 일장기인 ‘히노마루 게양’, ‘황국신민서사’ 제창을 강요하였다. 그 당시 신사참배를 거부한 18개 학교는 가차 없이 폐교시켰고 한국 기독교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강제 연행되었고 주기철 목사 등이 순교했다. 태평양전쟁이 치열하던 일제 말기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면 일왕에 대한 불경죄로 치도곤을 치루기도 했었다.

처음 옥천군내 신사 건립 시기는 1923년 4월 27일 매일신보는 “옥천면 삼양리 일본 ‘신명신사(新明神社)’에서 옥천-금산 간 도로개통식을 했다”는 보도기사로 보아 그 이전부터 옥천읍내에 신사가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옥천 삼양리에 1918년 신명신사 건립. 옥천 금구리, 이원역 부근 일인 집중거주
한편 『대륙신사대관』의 기록에 의하면 옥천면 신명신사와 이원 신명신사에 천조대신 이란 신(神)을 주신으로 모시고 1918년 4월 13일 삼양리 옥천성당 자리에 건립했고 이원 신사는 강청(대흥)리에 1924년 8월 29일 각각 건립되었음을 밝혔다.

1925년(대정 4년)의 옥천군 인구는 총77,040명이며 한국인이 76,441명, 일본거류민은 옥천군 총인구의 0.6%인 485명이고 중국인은 114명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1935년(소화 10년)의 옥천군 일본거류인은 488명으로 1925년과 거의 같다. 이 당시 영동의 일본거류민은 모두 563명이며 보은은 246명이었다. 1935년 충북 남부지역 일본거류민이 옥천과 영동에 많이 거주한 것은 1905년 경부선 철도가 현재 옥천과 영동 읍내를 관통하며 기차역이 신설되었고 일명 정거정을 중심으로 한 신시가지 일대에 교통의 편리성으로 일본인들이 잡화상 등 상업과 농장경영, 광산 종사원 등 일본 이주민들이 일본인촌을 형성하며 일찍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옥천역이 들어선 옥천면(읍) 금구, 삼양리 일대에 일본 거류민촌이 형성되었고 이에 따라 일본 전통종교인 신사가 다른 군보다 일찍 건립되어서 일제의 국가 기념일이나 명절 때 일본거류민들의 정신적 신앙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 1월 총독부의 지시에 따라 옥천군도 9개 면마다 면(面) 소재지에 신사를 건립키 위해 각 면마다 봉찬회를 결성하고 주민들 눈에 잘 띠는 면소재지 인근 야산에 건립하였다.

그 당시 옥천 읍내인 옥천면에는 옥천역이 위치한 신시가지에서 북편 약 500m 떨어진 구읍으로 가는 신작로와 접한 야산인 현 옥천천주교회 자리에 신사를 건립하였고 이원면의 경우도 신시가지화 된 면사무소 동쪽 300m 떨어진 이원초등학교 동편 대흥리 구릉지인 이원장로교회 앞에 신사를 세웠다. 

특히 청산면의 경우 청산면 동부인 해발 762m 팔음산 기슭에 그 당시 세계에서 최대 흑연이 매장된 흑연생산지 청산 명티리 ‘월명광산’에 신사를 건립, 광부들이 채광 갱도 입출 때 강제로 참배하게 했다.

안내, 안남, 동이, 청성면 신사는 면 소재지에  건립했고 군서면 신사는 은행리 상은 야산, 군북면은 석호리 백토산 중턱에 신사를 건립했다. 신사참배는 일왕탄생일을 기념하는 ‘덴쪼세쓰(천장절)’과 같은 국경일에 신사를 찾아가 주민이나 학생들이 단체로 참배하며 경배식을 가졌다. 옥천신사에서 천창절 기념식, 성년식, 무훈을 비는 지원병 출정식, 도로 개통식 등 옥천군의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총독부는 전시동원체제와 일왕 숭배를 위해서 각 면 초등학생들은 정오 때가 되면, 신사 쪽을 향하여 일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며 두 손을 모아 세 번 손뼉을 치고 합장하여 목례를 하였다. 이에 대해 삼양리 신명신사에서 “어릴 때 멋모르고 동네 형님들을 따라 가서 성년식 때 삼양리 옥천 신명신사에서 학생들의 성년식을 마치고 신사에서 떡과 잉어빵 모양의 빵을 나눠주어 먹기도 했었다”고 출향인 한양대 공대 오근호(82) 교수께서 구술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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