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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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살자
  • 황법명 백운사주지
  • 승인 2020.02.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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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법명 백운사주지

사람이 일반 동물과 크게 다른 것 점은 꼿꼿이 서서 두발로 걷는 기능에 있다고 일류 학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사람들을 자동차에 너무 의존하면서 직립보행(直立步行)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내 자신의 경우만 하더라도 먼 길을 오고갈 때 어쩔 수 없이 자동차를 타기 때문에 시간상으로 걷는 것 보다 타는 일이 더 많다. 그때마다 내 몸이 퇴화하는 듯한 느낌이다. 자동차로 인해 행동반경을 넓어졌지만 내 다리로 땅을 딛고 걸을 때의 그 든든함과 중심 잡힘이 소멸되어 가는 듯싶다.

의사마다 건강비결로써 두 가지를 들고 있다. 많이 걷고 생수를 많이 마시라는 것 옳은 말이다. 그 어떤 운동보다도 많이 걸음으로써 신체가 조율되어 활기차고 생수를 많이 마셔 신진대사를 활발히 함으로써 건강할 수 있다.

‘디비드르 브르통’은 2의 산문집 (걷기예찬)의 첫머리에 말한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은 것이라고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걷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걷기예찬)에는 걷기의 중요성만을 강조하지 않고 걷기의 즐거움을 표현한 루소, 스리븐슨, 바쇼,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로우 등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어 독자들은 즐겁게 따라 나설 수 있다.

17세기 일본의 방랑시인 바쇼는 그의 여행기에서 구름조각이 바람의 유혹에 못이기 듯 나는 끊임없이 떠도는 생각들에 부대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다 기슭을 떠돌았는데 이윽고 지난해 가을에는 강변에 있는 내 오두막에서 해묵은 거미줄들을 쓸어 낼 때였다. 이내 한해가 가고 봄이 돌아오자 가벼운 안개 속을 지나 “‘사라가’ 와의 울타리 저 너머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일었다. 족행신(足行神)이 내 정신을 흔들고 나그네 신들이 부르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진 나머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해진 바지를 꿰매고 갓끈을 손보는 즉시 벌써부터 ‘마스시마’의 달에 마음을 맡긴 채 다른 사람에게 내 거처를 넘겨주었다. 옛사람의 티 없는 그 바람기가 한없이 부럽다. 나그네의 가슴 한구석에는 이런 바람이 늘 불고 있을 것이다.

도보로 걷는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반드시 혼자야 한다고 하나같이 주장한다. 왜냐하면 자유 그 내재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끓임없이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한다. 나는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순례자란 무엇보다 먼저 발로 걷는 사람 나그네를 뜻한다. 순례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두더기를 털어낸다. 이 산하대지는 자동차의 타이어를 위해서 보다는 우리의 두 발을 위해서 예부터 있어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연 속에는 미묘한 자력이 있어 우리가 무심히 거기에 몸을 맡기면 그 자력이 올바른 길을 인도해 준다고 옛 수행자들은 믿었다. 자동차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 사람만이 그 오묘한 자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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