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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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왕(3)
  • 지옥임 수필가
  • 승인 2020.02.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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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임 수필가

정도전은 느긋한 마음으로 잘 따르는 몇 명의 동지들과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정도전과 친한 친구 권근은 이런 때는 미인과 화로를 옆에 끼고 술을 마시는 일이 가장 즐겁다고 말하면서 정도전에게 물었다. 정도전은 첫눈이 내리는 날 가죽 털옷을 입고 다리가 미끈한 준마를 타고 푸른 매를 데리고 들판을 사냥하는 일이 제일 즐거운 일이라고 말을 했다.

정도전은 해학이 풍부했다. 전날 밤 술을 많이 마시고 조정에 나가는데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말을 타니 마부가 걱정을 했다. ‘이놈아 원 별걱정을 다한다. 이쪽 신발은 이쪽 사람만 보고 저쪽 신발은 저쪽 사람만 보는데 누가 짝신인 줄 알겠나.’

이성계는 상당히 겸손한 사람이었다. 술에 취하기만 하면 정도전이 아니면 내가 오늘 어찌 이런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있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권근은 정도전에 대해 이렇게 시를 썼다. (온유하고 엄중하며 광채 나는 얼굴 그를 쳐다보면 높은 산을 우러러보는 듯하며, 그를 대하면 봄바람에 앉아있는 듯하다. 기염은 무지개를 놓은 듯...... 생략)

그날 밤 술을 마시다가 57세의 나이에 32세의 이방원에 의해 죽었다. 정도전은 32세에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세우는 꿈을 꾸었다. 이성계는 아들(방원)의 손에 의해 아버지의 나라 선비의 나라가 무너졌다. 이방원은 서자 방석이 세자로 봉해지자 앙심을 품고 명나라 주원장과 손을 잡았다. 명나라는 주 씨의 나라요 조선은 이 씨의 나라지 정 씨의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는 주원장의 말에 이방원은 정도전을 죽이기로 결심을 했다.

요동 땅을 넘보는 정도전을 죽이는 조건으로 주원장이 조선을 이방원의 나라로 만들어 준다고 약속했다. 주원장은 눈에 가시 같던 정도전을 죽이기 위해 아무도 몰래 군사를 파견시켜 놓았다가, 이방원의 지시로 명나라 군사에 의해 정도전의 큰아들만 그 자리에 없어 화를 면하고 집안이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이것이 1차 왕자난이다.

죽는 날 밤 같이 술은 마셨던 사람 하나가 이방원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은근히 시기 질투하던 권근도 결국은 정도전이 죽자 배신했다. 권근은 정도전이 죽은 뒤 이방원에게 붙어 평생을 미인과 화로를 옆에 끼고 술을 마시며 잘 살다 죽었다.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은 금나라 후예 여진족 출신이다. 옛날 전주에서 도망쳤다고 하나 무학대사는 혈통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조선과 여진족은 같은 혈통 고구려의 후손들이다.

정도전과 이성계는 고려 우왕시절(1383년) 동북면 지휘사 아가바토르 장군을 찾아가 새 나라를 세우기로 밀약했다. 이때 정도전의 아들 정진과 이성계의 큰아들 진안대군(이방우)가 같이 참석했다. 두 집안은 이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철석같은 맹약을 했다. 그러나 이방원은 왕의 자리에 눈이 어두워 두 집안간의 맹약을 뒤집어 업고 우리 국토인 요동땅을 내어 주었다. 두고두고 피를 토할 노릇이다.

이방원은 정도전(삼봉)이 죽고 16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정도전의 아들 정진을 불러 봉화 정씨의 명예회복을 해주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가 먼 훗날 1871년 3월 16일 대원군 이하응이 역적이란 누명을 벋기고 복원시켰다. 그리고 고종 임금에게 ‘문헌’이란 시호를 받았다.

그날 밤 이방원은 둘째 아들(효령대군)과 정진의 큰 아들을 만나 어렸을 때 두 집이 잘 지냈던 이야기며 정도전(삼봉)의 업적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조선을 설립할 때에 한양을 가로 세로 금 긋고 조선이란 이름을 짓고 경복궁, 사정전, 근정전, 남대문, 숭례문, 동대문, 홍인문, 서대문, 돈의문, 북대문, 숙청문 도성안 5부 49반 모두가 정도전(삼봉)의 작품이라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정도전(삼봉)이 정한 대로 불교를 걷어치우고 유학을 숭상시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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