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재 김씨, 조선후기 여류시인 김옥균 5대조 김시윤 청산현감 여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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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재 김씨, 조선후기 여류시인 김옥균 5대조 김시윤 청산현감 여동생
  • 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 승인 2020.02.1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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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조선 후기 여류시인인 호연재 김씨는 명문가인 안동 김씨 명문가의 규수로 충청도 홍주(洪城) 오두리에서 김성달 군수의 딸로 1681년(숙종 7년)에 태어났다.

호연재 김씨는 1636년 병자호란 때 왕비와 왕자 등 인조의 비빈과 가족들을 호위하여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강화도성이 함락하자, 송시영, 이시직과 함께 순절한 만고충신 김상용 선생의 고손녀이다. 김상용 선생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삼학사의 한 분인 김상헌 선생의 형으로 조선 후기 안동 김씨를 명문 가족으로 발돋움시켰다. 부친 김성달 군수는 슬하에 6남 7녀를 뒀다. 그녀는 4째 딸로 아버지에게 시문을 배웠다.

여류시인 호연재 김씨는 규방여인으로 배포가 크고 담대했으며 학문에 박식하여 그녀는 ‘벽상검청룡도’란 詩에서 보듯 품성이 호쾌하며 장대하다. 그녀의 시문학은 여성 특유의 세심한 감수성과 절제된 감정을 담아 詩로 남겼다. 섣달그믐 밤 감성적 정서를 읊은 ‘야음(夜吟)’ 그녀의 시를 감상해 보자.

“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 샘에 비낀 별빛 맑은 밤. 안개사람 댓잎에 스치고, 비이슬 매화에 엉긴다, 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인데,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 서러워라 한해는 또 저물거든, 흰머리에 나이만 더 하는구나!”

호연재 김씨는 19세에 대전 대덕구 회덕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선생 가문의 며느리로 1699년(숙종 25년) 소대헌 송요화(宋姚華)와 결혼해서 보은현감을 지낸 아들 송익흠과 그리고 딸 하나 두었다. 회덕 송촌동 동춘당 인근 시댁에서 관직을 따라 외지로 간 남편을 대신하여 동춘당 가문의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하였다. 또한 자녀 양육에 힘쓰면서 후손들에게 학문과 詩도 가르치는 등 훌륭한 규방여인으로 42세 생을 살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여류시인이다.

그녀가 시집와서 살았던 동춘당 내 근린공원인 대전시 송촌동 송용옥 가옥(대전시 민속자료2호) 부근에 호연재 김씨의 시비가 세워졌다. 그의 시아버지 송병하는 송준길의 손자이며 송병하는 군수 송요화의 아버지이며 분가하여 이곳에서 11대를 이어 살았다.

그녀의 호는 맹자의 ‘공손추’ 편에 나오는 “천지간에 가득하고 넓은 기운이다”는 ‘호연지기(浩然之氣)’에서 따와서 호연재(浩然齋)라 지었고 벼슬길로 외지로 다니는 남편을 대신, 가장으로 용기 있고 담대한 여성으로 40여 명의 가솔들을 위해 가난한 시집 살림을 야무지게 꾸려나갔다 전해온다.

호연재 김씨는 학문이 깊어 조카들의 학문을 지도하고 시를 가르치는 등 조카들의 존경을 받았다. 조카 송명흠(宋明欽)은 호연재 김씨의 성격에 대해 “수려한 용기와 함께 담소에 일찍이 마음속으로 감탄하였고 경서와 사서를 탐구하고, 강론하며 평론하시는 등 학문이 깊었다. 우리 형제들이 숙모님을 우러러 보았다”고 그녀의 품성을 평하였다.

조카 늑천 송명흠 선생은 송요좌 군수의 장남으로 부친이 일찍이 기묘사화를 피해 궁벽산촌 인 금강 상류인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 진걸 강마을로 낙향하자, 부친을 따라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청년시절 석호리 진걸 금강 건너 1십리 떨어진 옥천군 안내면 답양리 가산사(佳山寺)에서 면학에 열중해서 과거에 급제, 관직은 대사헌에 이르렀다.

송명흠 선생은 효종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사부로 당대 석학 이재(李縡) 선생의 수제자로 성리학의 대가이며 동생 한정당 송문흠 선생은 조선 후기 3대 서예가다. 한편 막지리 장고개에 효자각이 있는 손대창 효자는 송명흠 선생의 수제자로 벼슬을 마다하고 오직 성리학 학문과 부모 봉양에 힘써 유림들이 조정에 상소, 효자 정문이 내려졌다.

송요화 군수는 벼슬길에 나가 종2품까지 지내다 87세에 돌아갔다. 호연재 김씨의 오빠 김시윤(金時潤) 현감은 김옥균 선생의 직계 5대 조상으로 청산현감을 지냈고 그녀의 형제들은 편지로 서로간의 각별한 우애와 학문과 시문을 나누었다고 전해지고 안동 김씨 후손들은 보은 탄부와 옥천 안내, 안남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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