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오를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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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오를 자격
  • 박은주 시인
  • 승인 2020.02.2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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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시인
박은주 시인

지난해부터 매일 새벽 동네 생활체조교실에서 한 시간 가량 운동하고 출근한다.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에어로빅을 배우는데 나는 초보자여서 맨 뒷줄에 서서 앞 사람을 보며 따라한다. 동작을 보고 따라하는 것만도 벅차서 숨을 헥헥 거리고 팔다리가 마음과 다르게 움직여 한 시간 내내 헤매다 돌아오는데 몇 달 지켜보니 같은 동작이라도 하는 사람마다 크게 다른 걸 알 수 있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음악, 같은 동작을 하는데 한 동작 한 동작 크고 강하게 하는 사람은 몇 달 동안 체형도 달라지고 근육이 붙는 것이 보였다. 움직이는 대로 따라 하더라도 건성으로 하면 땀도 많이 나지 않고 운동한 보람도 없이 돌아간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유명 엔터테인먼트사 대표가 한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열정이 있다면 실력은 언젠가 생겨난다. 무대에 어울리는 사람이란 타고나 소질이나 능력 보다 열심히 하려는 자세와 자신이 서있는 무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실력도 중요하겠지만 마음가짐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그 실력이 오래 가지 못한다. 점점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퇴보하고 만다. 오늘도 우리 삶의 무대가 여러 세트장에 걸쳐 정교하게 설치되어 있다. 나는 여기서 내 역할을 다 하려고 두통을 앓아가며 고민에 빠져있다.

부모라는 무대에 서기 위해 필요한 자세가 있다. 교사나 공무원의 세계에 어울리는 자세가 있다. 누군가의 부모가 되기 위해 어떤 자격이 필요한가 생각하면 사람들의 가치관마다 다른 답이 나올 것이다. 공부를 잘 해서 명석한 두뇌를 물려주는 것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돈이 많아서 풍족하게 살다가 유산을 많이 남겨주는 사람이 좋다는 의견도 나올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되고자하는 부모상이 있을 것이다. 교사는 어떤가. 요즘은 예전처럼 존경받는 선생님으로서가 아니라 근무조건이 좋고 급여가 높고 안정적이어서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행동도 그런 마음에서 나온다. 상담 도중 어떤 학생이 불쑥 ‘쌤이 뭔데 날 가르치려 들어요?’라고 대들었다면서 요즘 학생들의 태도에 분개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나도 어이없고 황당했지만 교사와 선생의 차이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선생의 무대에 오를 자격이란 어떤 것일까.

대학 교수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에는 가짜 학회 사건으로 떠들썩했지만 연구비 유용이나 논문 표절은 끊이지 않고 뉴스를 장식한다.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인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지역경제를 위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관리들도 당의 추천을 받아야 다음 선거에 나갈 수 있으니 소속 당에 이익이 되도록 사업을 보류하거나 이미 확정된 사업을 잡고 있다가 선거에 맞춰 자신이 할 것처럼 공약으로 내걸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의 무대, 단체장의 무대, 회사원의 무대를 돌아 누군가의 배우자로서, 자식으로서 무대에 오른다. 누군가는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돈을 축적하는 것이 목적인 사람도 있겠고 갑의 위치를 고수하며 권력을 쥐려고 음모와 아부를 달고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행동이 무대에서 용인되는 사회이므로 슬프고 안타깝지만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조금씩이라도 바뀌어 갈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 삶의 무대에 올라 연기를 펼친다. 잘 하지는 못해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누구는 그냥, 대충, 억지로, 하라니까 할 테고 누군가는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할 것이다. 뭐 하나 딱히 잘 하는 것이 없어 내세울 것은 없지만 오늘도 내 무대가 있음에 감사한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고 무대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그림자에서 등을 돌려 밝은 쪽을 바라보며 자신을 다독인다. 당장은 큰 성과가 보이지 않겠지만 때와 장소에 맞는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있는 이 무대에 어울리는 자세를 갖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지금은 어울리지 않아도 자격을 만들어가는 이 순간도 빛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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