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왕(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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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왕(7)
  • 지옥임 수필가
  • 승인 2020.03.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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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수명이 긴 영조임금
왕들 중 최장수한 83세 영조의 삶을 돌아보자. 제21대 영조는 숙종의 차남으로 어머니는 화경숙빈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연잉군에 만 27세 때 왕세제에 봉해진다. 그리고 3년 후 이복형 경종이 요절하면서 만 30세에 왕좌에 오른다. 태어날 당시에는 희빈 장 씨의 아들인 세자(경종)가 있었기 때문에 영조는 결혼할 나이가 되니 혼인하여 출궁하였다. 왕세제가 되면서 동궁으로 들어갔다.

영조의 재위기간 51년 7개월, 부인 6명, 자녀 2남 7녀, 1비와 2비 정순(貞純) 왕후는 자녀가 없고, 3비 정빈 이씨 1남(진종 효장세자) 1녀, 4부인 영빈이씨 1남(사도세자) 4녀, 5부인 귀인 이씨 1녀, 6부인 숙의 문씨 폐비, 2녀. 

노론 소론의 당쟁 속에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며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등극한 영조는 당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왕권을 도전받는 변란이 발생되기도 한다. 영조는 이러한 난국을 비상한 정치능력으로 타개하며 탕평정국을 이끌어 나가는데 성공한다.

정미환국 노론들의 정치 보복을 반대하며 소론들이 조정에 합류하고 노론들을 대거 파면 탕평정책을 펴고자 했던 것을 정미환국이라 한다. 

을사처분 소론 대신들을 내몰고 노론인사들을 대거 등용시킨다. 이것을 을사처분이라 한다.  
이인좌란 소론일부 인사들과 남인의 급진 세력들이 경종을 위한 보복명분으로 왕권을 교체하려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것이 이인좌 난이다. 밀 풍군(소현세자의 증손)을 추대하여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자한 모반이다.

정미환국 탕평정국이 오래 지속되자 각 당파들은 다시 정권을 독점하기 위해 계략을 꾸미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사도세자 사건이다. 이러한 변란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영조는 어려운 시기를 잘 타개해나간다.

아들 사도세자가 영특해서 영조가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대리청정을 맡겼다.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하게 되자 남인 소론 소북 세력들이 사도세자를 등에 업고 정권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계비 정순(貞純)왕후 숙의 문씨 등이 사도세자와 영조 사이를 이간질하여 사이를 벌여놓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사도세자는 정신적 압박을 받고 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궁녀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 돌발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영조는 더 이상 대리청정을 시켜서는 안 되겠다 싶어 대리청정을 거두게 된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처가 노론들과 영조의 나이 66세에 15세의 어린 나이로 궁에 들어온 계비 정순(貞純)왕후, 숙의 문씨 등에 휘말려 사도세자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사도세자를 불러 자결을 명령했다. 사도세자는 자결하려 했으나 세자궁의 여러 신하들이 이를 말렸다. 그러자 영조는 사도세자를 세자자리에서 내쫓고 서인으로 삼는다는 명을 내리고 뒤주 속에 가둔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8일째인 음력 윤5월 21일(양 7월 12일)에 사망했다. 

영조는 성격이 급하고 과격했다. 잔인하게 내리쬐는 6월의 폭양 아래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8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게 하여 굶겨 죽였다. 11살 정조는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걸했지만 영조 할아버지는 들어 주지 않았다. 계비 정순(貞純)왕후는 쾌재를 부르며 간덩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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