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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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
  • 권예자 수필가
  • 승인 2020.03.0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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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예자 수필가
권예자 수필가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살을 빼라 했다. 체지방이 많고 여러 곳에 작은 문제가 있다고. 그래서 두 달 동안 열심히 운동하고 등산도 했다. 그 덕인지 엊그제 살펴보니 체중이 3kg쯤 줄었다. 기분이 좋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빠지라는 곳은 멀쩡하고 얼굴만 온통 주름투성이가 되었다. 거울을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이게 내 얼굴인가 싶다.

전에는 이마에 고속도로와 입가에 국도만 있던 얼굴이 오늘 보니 지방도, 간선도로는 물론 아주 작은 마을 골목길까지 마치 내비게이션처럼 길이 나있다.

게다가 햇볕 따가운 봄날에 모자 하나로 나돌아 다녔더니 안색은 고추장아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로우대를 받으려면 꼭 신분증을 보여야만 하던 것이 이젠 지하철도 기차도 묻지 않고 그냥 우대해준다. 더구나 보는 사람마다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이 먹는 것 정말 속상하다. 체력도 약해지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몸 이곳저곳이 심심하면 삐걱삐걱 고장이 나서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게다가 주름살이 온 얼굴에 퍼지니 가난한 내가 더 가난해 보인다. 내가 나를 봐도 흉하고 싫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것도 아무나 누리는 복은 아니다. 나이 한 살 먹기가 쉬운 일 같아도 1년 365일을 기쁜 일, 섭섭한 일, 어려운 일을 다 겪어내며, 아주 조심스럽게 넘겨야 겨우 한 살 먹는다. 그 중 하루를 잘 넘기지 못하면 나이는 그날로 정지되고 자신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면 얼굴에 주름살 좀 많다고 실망할 일은 아닌 듯하다.

대체로 어르신들은 어디서 나이를 물으면 기분 나쁘다고 하신다. 나도 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속상하거나 부끄러울 일은 아니다.

어린 나이에 이승을 떠나는 이도 있고, 결혼도 못해보고 가는 분, 회갑도 못 넘기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도 어른 대접 받을 나이까지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운이 좋았고, 부모님으로부터 건강한 몸을 물려받은 덕이 아닐까 싶다.

젊어서는 다른 사람은 다 늙어도 나는 안 늙을 줄 알고 자신만만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누가 거스르겠는가. 결국은 나도 얼굴에 섬세한 지도를 그린 내비게이션이 되었다. 어찌 생각하면 내세울 건 없어도 삶의 힘든 고비 고비를 허덕이며 넘어온 것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문제는 얼굴에 내비게이션 같은 주름살을 새길 정도가 되었으면 세상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아주 깊게는 모르더라도 후대들이 물으면 어느 정도의 대답은 해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내가 아는 길은 짧고 단순하다. 큰길이 위험하지 않다. 내 행동에 따라 내가 받는 대우도 달라진다. 사랑이 없는 마음에는 미움도 깃들지 못한다. 순리에 따르면 무리가 없다. 그리고 누구인가가 말한 ‘고통스러운 어머니가 건강한 아이를 낳는다.’ 정도다. 

그런데 모든 걸 순응해도 잘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몸은 해마다 눈에 띄게 변하는데 마음은 어째서 늙지 않고 젊은 날 그대로인지…. 적당히 포기하고 버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답답하다. 맛있는 것은 먹어도 더 먹고 싶고, 좋은 것은 가져도 더 갖고 싶으니 큰일이다. 그뿐인가. 싫은 사람과 좋은 사람의 구분이 명확해서 스스로 아이인지 어른인지 구별도 안 될 때가 많다.

남들처럼 자랑할 만한 봉사도 해본 적 없다.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은 시작도 못 했다. 아마도 철들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그런데도 가끔은 나잇값을 하려는 듯 남의 길을 가르치려 하니 한심하다. 언강생심 남의 길은 그만두고라도 내가 가는 길이나 똑바로 잘 찾아갔으면 좋으련만.
내비게이션이 내비게이션에게 정중하게 묻는다. 
“임의 마음에 닿는 길은 어느 길로 가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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