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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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44)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3.03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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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 학장을 겸직하고 계셨던 원장님이셨기에 대학에 대한 애정도 크셨던 여장부셨다. 그 원장님이 하루는 나를 원장실로 부르셨다. 

“내가 NMC를 떠나게 되어 간호대학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해보았는데 이제 간호대학도 학장을 간호학 교수가 하는 것이 맞는 것 같 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가 가면서 학장직을 송 교수한테 주고 가기로 결정했으니 받도록 하시오. 단 복지부 장관님한테는 내가 직접 인사에 관한 건을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니 그 일은 송 교수 남편이 장관한테 이야기하도록 하면 나는 NMC 원내에서 겸직제도를 바꾸도록 할 것이니 그리 아세요.”

예상치 못한 엄청난 제의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학장님께서 그렇게 간호대학의 발전을 위해 마지막까지 고심해서 그런 결정을 해 주시니 무어라 감사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학장직을 내려 놓으신다면 저는 아닙니다. 학교에는 저보다 선배인 교수들이 줄줄이 계시는데 어찌 40대 초반인 제가 학장을 맡아 할 수 있겠습니까? 박 교수님이 NMC 졸업생 중 제일 선배 교수시고 교무과장도 역임 하셨으니 선배이신 박 교수님이 맡는 것이 순리인 것 같아 박 교수님에게 학장직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학장직을 내려 놓으려는 것은 송 교수한테 맡기고 싶은 거예요.”

단호하게 말씀하시며 남편한테 복지부장관님께 말씀이나 드려놓도록 하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났다. 나는 내 연구실로 돌아와 아무리 생각해도 고민이 되어 정명실 교수를 불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정 교수도 정답이 있을 리 없었다. 간호학 교수가 학장을 받을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나는 도저히 받을 마음이 없었고 그렇게 둘이서 걱정만 하다가 답없이 헤어졌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며 장관님께 원장의 학장 겸직 폐지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당신이 학장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얘기 하겠다.”

“나는 분명히 주 학장님께 선배 박 교수가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고, 지금도 그 마음엔 변함이 없으니 염려하지 마라.”

나는 이튿날 학장님을 만나 남편과의 이야기를 전했다.

“남편이 장관님께 이야기를 해 주는 조건으로 저는 절대 학장을 맡지 않기로 했으니 박 교수님께 학장직을 주시는 것으로 하시지요.”

그러자 학장님이 화를 버럭 내셨다.

“송 교수, 내가 이런 결심을 한 것이 쉬운 일인 줄 알아요? 알다시피 다음 원장인 P 원장과는 내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이인데, 내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학장직을 간호대학 교수한테 주면 다음 원장이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의사들한테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간호대학을 위해 나름 큰 결심을 한 거예요. 내가 후임을 잘 선정해서 학장직을 주고 가야 그나마 뒷말을 덜 들을 것 아니에요? 송 교수가 정 안 받겠다면 이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 나도 심적으로 부담이 많았는데 이것으로 이 건은 끝냅시다.”

경상도 사투리의 단호한 어조인 학장님의 말씀에 더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연구실로 돌아와서 정 교수를 다시 불렀다. 아무리 박 교수님을 말씀드려도 도저히 내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어 없던 일로 했으니 이 일은 그냥 없던 일로 묻어두자고 했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남편에게도 학장님의 결정으로 끝났으니 이제 이 건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내가 학장직을 거절한 데는 내 나름대로 선배 교수가 하는 것이 이제 갓 40대 초반인 내가 하는 것보다 학교가 편안하리라는 이유가 있어 그랬지만 당신은 왜 내가 학장을 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궁금하던 질문을 하자 남편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당신은 몸도 약해서 교수하기도 힘든 판에 기관장을 맡아 학교 운 영의 책임을 맡는 것은 당신 건강상태를 볼 때 절대 무리이고 또 그 일로 인해 선배 교수들과의 갈등도 생길 것이고, 그러면 심신이 지쳐서 약한 몸이 지탱하겠소?”

남편이 내가 학장 되는 것을 반대한 남편스러운 이유였다.

간호대학 폐교 계획을 알고 있소?

95년 6월, 강의하는 중에 갑자기 직원이 들어와 쪽지 하나를 내밀며 “중요한 일이니 전화를 주시래요.” 하고 나갔다. 나는 부랴부랴 강의를 마친 후 남편에게 전화해서 무슨 일로 급하게 전화를 하라고 했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간호대학 폐교 사실 알고 있소?”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 학교가 폐교된다고요?”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보건복지부 장관실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내년부터 신입 생 모집을 중지하고 국립의료원 이전이 이미 확정되어 장관에게까지 보고된 사실이니, 학장한테 가서 빨리 사실 여부를 확인해봐요.”

남편 말에 나는 혼이 나간 듯 원장실로 뛰어갔다. 급한 마음에 단도 직입적으로 물었다.

“학장님, 우리 대학이 폐교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세요? 아님, 학장님 도 모르시는 거예요? 저는 이 말을 듣고 너무나 기가 막혀 먼저 학장님 께 여쭈러 왔습니다.”

내 말을 들은 L 학장님이 잠시 눈을 감고 있더니 말했다. “나는 알고 있었어요.”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학교가 폐교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고도 학장님으로 그냥 침묵하 고 계셨다는 말인가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내가 복지부에서 그 이야기는 들었지만 확정되어 발표할 때까지는 철저히 비밀을 지켜달라고 해서…. 공무원으로 공무상 기밀을 교수들에게 말할 수도 없고 나도 실은 고민이 많았어요. 이제라도 학교에서 교수들이 나서서 폐교를 막을 방법이라면 무슨 방법이든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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