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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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 배정옥 수필가
  • 승인 2022.07.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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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르 쾅쾅 우르르 콰쾅’

천둥소리 먹구름 사이로 자지러질듯 번뜩번뜩 시퍼렇게 세운 칼날이 허공에 번뜩인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린다. 우기라 당연하려니 생각했다. 아침밥을 짓고 있으려니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졌다. 천둥 번개가 치고 장대 같은 빗줄기가 선명하게 수직으로 내리꽂는다. 잠시 걱정이 앞섰다. 지난주 경기지방과 충청지역 곳곳에 비가 많이 왔다. 산이 무너져 내리고 건물이 침수되었다. ‘혹시’ 하는 생각에 창밖을 보았다. ‘우두둑우두둑’ 유리창을 내려치는 빗소리가 공포를 자아냈다.

아무리 덥고 장대비가 쏟아져 강물이 넘쳐흘러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그치기를 간절히 바랐다. 유리창을 흘러내리는 빗물은 마치 폭포수와도 같았다.

대중매체나 사람들은 공포성 폭우라고 하였다. 스콜성(열대지방에 대류에 의하여 나타나는 세찬 소나기성 집중 호우) 폭우가 잇따르고 있다. 또한 국지성 호우(한정된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비)로 시간당 70mm에서 90mm가 넘는 물 폭탄을 방불케 했다는 뉴스들로 매스컴을 채워나갔다.

지난주 지인들의 단체 카톡방에 뜬 사진과 뉴스에서 본 영상들이 떠올랐다. 청주시가 물 폭탄 같은 폭우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시내 전역에 보트를 타고 다니는 사진, 물에 휩쓸려 밀려 나온 물고기와 미꾸라지, 자라가 시내를 기어 다니는 사진, 산과 계곡이 무너져 내리는 사진 등이 올라왔다. 안타까움에 가슴이 타들어 가듯 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큰 피해가 없기를 지인들의 안부를 물으며 마음을 졸였다. 뉴스에도 건물이 물에 잠기고 계곡 주변에 살던 노부부가 갑자기 불어나는 계곡물에 놀라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망연자실해 하며 쏜살같이 밀려드는 계곡물만 바라보고 있다. 

가뭄이 지났다 했더니 이젠 폭우로 힘들게 하고 있다. 변덕스런 날씨에 올봄부터 지난달 말까지 계속된 가뭄에 마음을 졸였던 농민들은 이번엔 폭우로 두 번 울린다며 인삼밭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며 쓸려나간 밭을 바라보며 탄식하던 농부의 영상이 빠른 속도로 스크랩되었다.

나는 새벽에 밭에 나간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에 안심은 했지만 몇 년 전 장마 때가 생각났다. 더듬이에 촉을 세우고 기억을 더듬어 나갔다. 

밤새워 내린 비로 농작물이 걱정이 되었던 그때 이른 새벽에 나갔다 온 남편의 얼굴은 잿빛으로 역력했다. 밭둑이 다 무너져 내렸던 것이었다. 윗집 밭둑이 무너져 내려 우리 밭으로 흙이 다 쓸려 내려와 농작물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 우리 밭둑 또한 절반이 허물어져 떠내려갔다. 그 광경에 나도 할 말을 잃었었다. 망연자실이란 말을 이럴 때 쓴다는 걸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손 놓고 있을 수만 없잖은가. 우리네 삶은 때론 초심을 잃고 삐걱거리기도 하고 쿨럭이기도 하지 않던가.

주말로 날을 잡아 우리 가족은 팔을 걷어붙이고 밭둑을 붙이는 작업을 해야 했다. 예전 같으면 농촌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짚으로 만든 가마니 포대에다 흙을 퍼부어 차곡차곡 쌓았다. 요즘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자연석을 이용한 밭둑 쌓기에는 메쌓기와 찰쌓기 두 종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찰쌓기는 모르타르나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돌을 쌓는 방법이다. 메쌓기는 콘크리트 사용없이 돌을 짜 맞추어 쌓는 방법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긴 하나 배수에 신경을 썼다. 미관에도 보기가 좋은 자연스럽고 친환경적인 메쌓기를 택하기로 했다.

방법으로는 처음 밑자리에 큰 돌을 놓고 작은 돌을 채우고 돌을 짜 맞추어 한 단 한 단 올렸다. 앞에는 돌을 바로 잡아주는 고임돌을 놓았다. 뒤채움 돌은 잔돌을 많이 넣어 배수에 신경을 써야 했다.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콩죽 같은 땀을 흘렸던 기억의 영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리 힘들고 온몸이 물수건처럼 젖어 그로기상태가 되었었다 해도 그때 새삼 가족의 중요성을 느꼈다. 가족은 실을 날줄로 엮듯 그렇게 엮어가는 것이 가족이다.

세기말 우리나라는 IMF라는 된서리를 맞았다. 가족과 이웃과 서로 반목하지 않고 극복해냈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불행을 당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자. 내게 주어진 시간을 조금씩 나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누어주자. 마음과 마음을 잇고 함께 걸어가는 그 길, 머지않아 건들 부는 바람에도 산들거리는 코스모스가 피어나리라.

장대 빗줄기는 모진 흔적을 남겼다. 몰아치는 폭우 속에 활짝 핀 해바라기가 안절부절 방향 없이 돌다가 이내 제 자리를 찾는다. 그렇게 세차게 쏟아붓던 소나기가 다행히도 잦아들고 있었다. 아마도 족히 삼사십 분을 내렸던 것 같다. 천둥 번개도 멈추었다. 빗줄기는 여전히 굵어지다 가늘어지다 반복을 하며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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