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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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 김기순 수필가
  • 승인 2022.11.1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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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엄마들은 휴대폰에 아들의 닉네임을 ‘내 남자’라고 저장한다고 한다. 농거리라는 비난도 있지만 나는 힐책을 살 만한 소지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보고 또 봐도 예쁜, 금쪽같은 내 아들이니 내 남자라면 어떻고 내 새끼라면 어떻겠는가.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원초적 본능이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을. 

여기에는 흉도 허물도 옳고 그름도 논할 일이 없다. 내 피와 내 살을 받아 세상에 나온 자식이요,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꺼질세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며 키운 자식이니 그 귀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옥이야 금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는데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내 남자라고 논쟁하는 장면이 잡힌다. 시어머니 쪽 패널과 며느리 쪽 패널들의 갑론을박이 과열되어있는 현상이다. 

채널을 고정시키고 시청을 하려니 아연실색 머릿속이 혼란해진다. 주제는 시어머니에게 아들 며느리집의 현관번호를 알려주는 것이 옳다 그르다를 놓고 벌이는 토론이었다. 며느리 쪽은 시어머니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이고 시어머니 쪽은 내 아들집에 가는데 왜 제재를 받아야 하느냐며 반박하는 상황이다.

아들이 장성하면 결혼하여 부모 곁을 떠난다. 이로써 한 남자 사이에는 두 여자의 사랑이 존재하게 된다. 

시어머니는 영원히 내 남자일 줄 알았던 아들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배신감에 아들을 빼앗아 간 여자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고, 며느리 역시 내 남자의 사랑을 나누어가지려는 시어머니가 달갑지 않다. 이로써 두 여자 사이에는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암묵적 경쟁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고부갈등의 원인이다.  

어떻게 기른 자식인데 내 아들 곁에는 근접도 하지 말라는 말이냐며 맞서는 시어머니 쪽과, 아들이 장가갔으면 며느리의 남편인 것을 인지하라는 며느리 쪽의 주장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서로 내 남자를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절실한 장면이었다. 

아들이 장가갔다하여 남이라 생각하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시어머니 쪽이 잠시 우세인 듯싶더니 이내 판세가 뒤바뀌는 모양새다. 이미 장가를 갔으면 내 아들이기 전에 며느리의 남편이라는 며느리 쪽의 반론은 어찌나 당당한지 그 기세에 밀리지 않을 수 없어 보였다. 아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한 가정의 가장이요 한 여자의 지아비가 되는 것이니 언제까지 품안의 자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며느리 쪽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부모에게 자식은 삶의 전부요 생명과도 같은 존재다. 그런 자식을 가까이하지 말라니 이보다 황당무계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들이 결혼을 했을 뿐인데 마음대로 찾아가서도 안 되고 전화도 자주하지 말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시어머니 쪽 역시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아들이 버는 돈을 며느리가 관리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감히 곁눈질도 못한다. 다만 며느리가 주는 용돈을 고마워 할 뿐이다. 용돈도 아들이 어머니에게 직접 주는 것은 금기 사항이다. 주더라도 아내의 허락을 받고 주어야 한다. 불만 아닌 불만도 쏟아져 나왔다.

시대가 변했다. 옛날에는 곳간열쇠를 쥐고 있는 시어머니의 권위가 단연 위였다. 요즘은 고부평등의 시대를 넘어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는 세상이다. 얼마 전 며느리에게 구박받는 시어머니가 화제가 되어 경악을 금치 못했던 일이 있었다. 

며느리는 아침마다 시어머니를 밖으로 내쫓았다.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거리를 헤매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아들이 알면 속상할까봐 말을 못하고 참고 산다고 했다. 자기는 고통을 받을지언정 아들 걱정만 하는 노모였다. 

과열되었던 토론도 사그라지고 어느덧 종료시간이 가까워지자 시어머니 쪽 패널 한분이 “내 아들만 행복하다면…”하고 읊조리듯 내뱉었다. 

어머니는 자식 앞에서 강하다. 그런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약해질 수 밖에 없는 솔로몬의 지혜가 생각났다. 

그러자 또 다른 분이 “사실 부모가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둘이 행복하게 잘 살면 그것으로 감사하죠”라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며느리에게 아들을 빼앗겼다는 심정이 아니라 아들을 맡겼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 아들이 ‘내 남자’ 인 것처럼 남편도 시어머니에게는 소중한 ‘내 남자’라는 것을 젊은 엄마들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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