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산] 가스라이팅(Gas-l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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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산] 가스라이팅(Gas-lighting)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3.02.2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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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Robin Stern)은 그의 저서 ‘가스등 이펙트’에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가해자와 그를 이상화하고 그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피해자가 만들어내는 병리적 심리 현상’을 ‘가스등 이펙트(Gaslight Effect)’라 설명했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거짓말, 사실에 대한 부정, 모순된 표현, 비난 등을 통해 상대방 스스로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은 점차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며 가해자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가해자는 이런 심리적 상황을 이용해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고 지배력을 행사한다. ‘가스라이팅’을 겪은 피해자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겪으며 사회적 관계에서 점차 고립된다. 특히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은 피해자 자신의 감정과 생각, 인지 경험까지 믿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정서적 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

주인공 폴라는 세계적인 성악가인 이모 앨리스 앨퀴스트가 죽자 거액을 상속받는다. 유산을 노리고 폴라와 결혼한 남편 그레고리는 폴라가 남편이 선물한 브로치를 잃어버리거나 그림을 훔친 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의심하고 몰아가기 시작한다. 실제로는 그레고리가 브로치를 숨기고 그림을 옮긴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폴라는 점차 자신의 기억력을 의심하기 시작하며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

그레고리는 밤마다 외출하는 척하며 저택 어딘가에 있는 앨리스의 보석을 찾기 위해 다락방을 뒤진다. 다락방 불이 켜질 때마다 폴라 방의 가스등 불빛은 희미해진다. 매일 밤 어두워지는 가스등 불빛과 발소리를 이상하게 여긴 폴라가 그 사실을 말하자 그레고리는 폴라가 환각을 보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폴라를 정신이상자로 몰아세운다. 폴라는 점점 혼란스러워하지만 결국 앨리스의 팬이었던 경위 브라이언의 도움을 받아 그레고리의 정체를 밝히고 자신을 되찾게 된다. 
연극은 1940년 영국에서 영화화됐으며 1944년 미국 헐리우드에서 잉글리드 버그만 주연으로 리메이크 돼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가스라이팅은 가정이나 학교, 연인, 군대, 직장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단체 등에서 주로 발생한다. 대부분 수평적이 아닌 수직적 권력 관계에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가스라이팅’이 이뤄지게 된다.

‘도담노인요양병원’이 ‘가스라이팅’ 실사례다. 병원 실세인 L씨는 힘없는 실습생(그것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살된 아이를 둔 엄마)을 타겟삼아 끊임없이 당근과 채찍을 던졌다. 때로는 위로해 주는 말을 해 주는 척 하다 어느새 공갈과 협박으로 바뀌었다. 그때마다 실습생은 눈물로 호소를 하고 애걸을 했다. “제발, 고소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그것도 수차례에 걸쳐. 
하지만 병원 관계자는 그러한 말은 처음부터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녀를 주범(?)으로 몰고 가 소기의 목적을 이루려는 것 외에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나 도덕은 그에게 사치였다. 

‘고소’라는 단어를 이용해 죽은 자의 심리와 상황을 그때마다 교묘하게 끼워 맞춤으로써 죽은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은 물론 아무런 의지도 가질 수 없는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세상천지 어느 아이 엄마가 자신을 고소하겠다는데 정신이 멀쩡할 수 있겠는가. 

숨진 엄마가 남긴 휴대폰 속 ‘유서’에는 차마 맨 정신으로는 읽기 어려운 글들이 넘쳤다. 이제 두 살된 아이를 걱정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엄마, 남편, 친척 등에 대해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의 일들에 대해 고통 넘치는 심정으로 절절히 담아내고 있는 글을 읽노라니 도저히 읽어 내려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얼마나 오랜 기간 협박을 받았으면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겠는가 하는 생각에 다다르자 필자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동시에 어금니가 깨물어졌다.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고 계획적으로 감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말을 할 수 있을까, 녹음 속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마치 리모컨을 이용해 자신의 마음대로 상대방의 심리를 쥐락펴락하는 목소리 자체만으로도 전율을 넘어 잔인함이 넘쳐 났다. 

성경 마태복음 16장 26절을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며 사람 목숨이 없으면 천하에 제 아무리 귀한 것도 그 어느 것도 유익한 것이 없다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목숨이 없는데 천하를 얻은들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미다. 

병원 L씨와 죽은 L씨의 남편과의 통화 내용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신(병원 L씨)이 내 와이프를 죽였다. 당신은 살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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