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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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옥임 수필가
  • 승인 2023.05.0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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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볼일이 있어 시 외곽에 나왔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남편이 이왕에 나왔으니 바람이나 쏘이자고 한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나들이를 하지 못해 답답했나 보다. 그럼 그러자고 했더니 자동차 핸들을 무주리조트 쪽으로 돌린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시장 가게 일은 까마득히 잊은 채….
리조트에 도착하니 이름값이라도 하듯 이국적인 모습의 콘도들이 스키장과 어우러져 여름에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공연히 들떠 나이에 걸맞지 않게 목소리의 톤을 높여 떠들었다.

긴 코스에서 묘기를 부리며 내달리는 스키어들의 모습이 마치 개미떼가 긴 행렬을 이루며 장을 서는 것 같이 보인다. 

추운 줄도 모르고 넋을 잃고 바라보다 시선을 돌리는 순간, 짧은 코스 쪽이 눈에 확 들어온다.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연달아 넘어지고 또 넘어져 일어나기에 급급한 초보들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배를 잡고 웃었다. 우리 아이들이 스키장에 다녀오면 엉덩이가 아프니 여기저기가 결린다며 꼼짝도 못 하고 며칠을 누워있던 것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내가 스키를 타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신이나 있는데 옆에서 뭐가 툭 하고 걸리는 느낌이 들어 발을 비키며 돌아섰다.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스키를 신고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서 낑낑거린다. 꼬인 스키를 바로 펴서 간신히 일으켜 세워놓으니 또 넘어진다. 반복해서 몇 번을 일으키고 넘어지고 하다 보니 진땀이 난다.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로 “너희 엄마 아빠는 어디 갔니?” 하고 물으니, 아이는 누워서 듣기 싫은 표정으로 눈에 힘을 주고 쏘아보며 “아니요. 나는 혼자서 배울 거예요.” 하며 아주 야무지고 당차게 말대꾸를 한다.

요즘 애들은 참 똑똑하기도 하고 목표를 향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만치에서 얼른 오라는 남편의 성화에 넘어지는 애를 뒤로하고 눈썰매장 쪽으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주고 조심조심 걸어갔다. “우리도 썰매 한번 타볼까?” 하는 남편의 제의에 무서워서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너나 할 것 없이 살기가 힘이 드니 어쩌니 하면서도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 중얼거리며 저 건너 쪽을 바라보았다. 유치원생들인지 수십 명의 아이들이 짝을 지어 완전 무장을 하고 앞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을 잘도 따라 한다. ‘참 좋은 세월이다. 저 어린 것들을…’ 하며 또 두런거린다.

이런저런 모습을 바라보니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논배미에다 물을 가두어 놓고 날이 추워지기만을 기다리며 언제쯤이면 얼음이 얼까, 하는 마음에 아침마다 논배미로 달려가 문안을 드린다. 얼음이 얼었다고 생각이 들면 아버지가 만들어 준 썰매를 가지고 동네 오빠들을 따라가 신나게 썰매를 타다가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지면 옷이며 양말을 다 버리고 논둑에다 불을 놓아 말린다고 양말과 옷을 태워 엄마에게 혼도 많이 났다.

아버지가 썰매를 만드시는 날이면 옷 버리고 태우는데 그걸 또 뭐 하러 만드느냐며 엄마는 싫은 내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마의 성화에도 못 들은 척 콧노래를 부르며 썰매를 만든다. 연을 만드는 날에는 온 방을 다 어질러가며 대나무를 깎는다. 그리고 문 바르고 남은 창호지로 방패연과 긴 꼬리연을 만든다. 무거워야 잘 돌아간다며 참나무를 베어다가 깎아 만든 다음 뾰족한 끝에다 못을 박아 팽이를 만들던 날도 어머니는 화를 냈다.

어머니의 불평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와 우리는 한편이 되어 신이 났다. 그런 아버지 덕에 나는 유년 시절을 말괄량이처럼 동네 오빠들과 놀았다. 노는 것이 재미있어 겨울 방학이면 점심은 아예 거른 채 다 저녁때가 되어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어린 시절 다랭이 논밭을 망아지처럼 종횡무진 내달리던 그 시절이 스키를 타는 아이들 위로 겹쳐 가물거린다.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흐른 것 같지도 않은데 세상이 많이 변화되었음을 실감한다. 일을 한다는 핑계로 바깥세상과 너무 단절하고 살았다는 생각도 든다. 

꼭 우리 어려서처럼 살라는 법은 없지만 너무 흥청망청한 것 같아 약간은 염려스런 마음을 안고 신나는 스키장을 뒤로 한 채 돌아섰다. 계획에도 없던 나들이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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