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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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작가
  • 승인 2023.09.0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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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작가

무의미한 열매를 매달아 슬픈 「체화」를 보고

꽃이 가지에서 피지 않고 아랫동아리 덩치에서 어린아이 몸둥이서 피어나는 홍역꽃처럼 탐스러운 정열에 못 견뎌 진홍으로 피어나는 꽃을 강진에서는 체화(棣花)라고 한단다. 꽃이 이운자리에 완두콩 같은 열매가 맺는다. 그러나 열매의 용도는 먹는 것도 기름을 짜는 것도 씨를 뿌려 다시 모종하는 것도 아닌 그저 매달려 있기 위한 열매란다. 이런 무의미한 열매가 열리는 것은 나무로도 슬프단다. 그러나 체화나무 열매는 모두 한 성(姓)이란다. 즉 형제간을 상징한다. 하지만 사람의 정열에서 맺는 열매는 성(姓)도 다를 수 있으니 그것은 매우 슬픈 형제일 것이라고 정지용은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 정열이라는 것은 사람을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게 만드는 힘의 원동력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거나 그릇된 정열을 헛군데에 쏟아버린다면 모든 일을 그르치게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참 공평한 세상이다. 옛말에 ‘저 먹을 복은 다 타고나는 법이다’고 했다. 필자도 이 법칙을 증명이라도 하듯  밥을 굶지 않는 것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말이 어눌한 사람은 글을 잘 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말을 썩 잘하지 못한다. 물론 말도 글도 잘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정말 억울하게도 말도 글도 항상 시원찮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부류의 사람인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의견을 아끼거나 내뱉는다. 그러나 큰일 날 일은 여기에 있다. 그렇게 말을 아끼고 겸손을 자칭하며 조용히 있을 때도 사회라는 큰 축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게 마련이다. 스스로 말과 글이 모두 어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말과 글이 모두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양분되며 사회를 이끌기 때문이다. 

전자는 어눌하다는 생각에 사회 공간에서 주눅 들어 있다. 후자는 항상 자신감이 팽배하며 주위의 시선을 끈다. 그래서 말과 글을 갖춘 사람이 앞서서 세상에 자신의 의견을 반영한다. 때로는 그 의견으로 사회를 지배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인간 사회에도 최소량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을. 즉 식물의 생육에서 그 식물이 필요로 하는 여러 물질 중에서 가장 적게 존재하는 물질에 의해 지배된다는 법칙 말이다. 이것을 보면 인간은 조금 모자라거나 지나치게 남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 사회도 생물처럼 최소량의 법칙이 존재할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인간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예술가라 지칭되는 작가의 삶은 어떠한가? 

예술이란 ‘일체의 실리(實利)를 떠나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빛깔․모양․소리 등에 의하여 미적으로 창조․표현하는 인류 문화 현상의 하나’며 예술가란 ‘예술 창조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이른다고 표준국어대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술이라는 옷을 입은 예술가인가? 그것도 아니면 작가인가? 작가란 ‘시가(詩歌)․ 소설, 그림 그 밖의 모든 예술품을 창작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된다. 그러면 예술가나 작가는 일정한 혹은 유동적이나마 ‘~을 전문으로 창조하는 사람’이거나 ‘~을 창작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되는 것인가? 이런 ‘~사람’이 되면 작가나 예술가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스스로 반문하게 된다. 우리는 작가로 예술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작가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 작가적이란 ‘작가로서의 주의, 주장, 양심, 태도를 가지는 것’을 지칭한다고 한다.

우리는 예술가나 작가를 주장함에 있어 스스로 만족하거나 교만에 이르지 않아야 할 것이며 작가적인 예술가, 작가적인 작가로 사회를 이끌어야만 할 것이다. ‘서울담쟁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 서울에서는 담장을 쌓을 때 꼭 2인 1조를 이뤄 쌓는다. 한 사람이 담장을 쌓을 동안 다른 한 사람은 담장에 기대어 서있다. 담장 쌓기가 끝나고 돈을 받을 때까지 그렇게 담장에 꼼짝도 않고 담에 기대어 있다가 돈을 받으면 서둘러 그 자리를 뜨는 것이다. 그들이 마을을 벗어날 쯤에는 담장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만다. 이런 무책임한 사람을 이를 때 쓰는 서울담쟁이라는 말에 (서울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작가라는 꼬리표를 단 나는 가끔씩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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