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곡과 송시열 선생도 찬양한 곽은(郭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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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곡과 송시열 선생도 찬양한 곽은(郭垠) 선생
  • 전순표 옥천향토전시관장
  • 승인 2023.09.14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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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입향 삼사좌윤 곽수원 손자
 
조선 성종 때 문신으로  자는 안부이며 호는 용촌 본관은 선산 곽씨이다. 할아버지는 조선 초기에 중정대부삼사좌윤을 지낸 곽수원으로 옥천군 이원면에서 처음 옥천에 살았다. 아버지는 진사 곽기이며 어머니는 진산 진씨이다.

1465년(세조 11년) 생원시험에 급제하였고 1472년(성종 3년)에 춘당대시에 문과 갑과 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승문원 검교가 되었고 다음해에 정조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관직에 나가 1481(성종 12년)년 사헌부 지평, 집의 , 헌납, 성균관 전적, 령 등을 두루 거쳐서 담양부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학문을 숭상하고 예의품절에 관한 풍속을 존종하여 고을 사람들이 그를 부모처럼 따르고 존경하였다.

담양 잘 다스려 추대와 존경 

 그는 담양부사에 부임하여 양사제기문(養士齊記文)을 지어 인재 육성에 힘썼고 향교에 장학재단 보(寶)를 설치하여 흥학의 기반을 마련하여 가난한 선비를 육성함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백성의 노역을 가볍개 하고 조세를 적게하여 가르치고 이끌어서 교화를 밝게 하고 예의범절의 풍속을 도탑게 하며 백성 사랑함이 진심에서 나오니 백성들의 추대와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가 담양 백성들에게 어질게 베풀고 선정함을 조정에서 알고서 그를 1491년(성종 22년)승정원 동부승지로 승진시켰다. 그러자 담양 고을 백성들은 그가 이곳 담양을 떠나지 못하게 막아 우연히 병을 얻어 담양에서 급서하였다. 그러자 담양 사람들은 술과 고기를 끊고 부모상을 당한 것처럼 슬퍼하니, “어진 원님이 운명하였으니 필히 고을 사람들이 어육을 먹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율곡, 남효온, 송시열도 찬양

온 고을 사람들이 객사 동편에 명부사를 지어 해마다 긍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율곡 이이는 곽은 담양부사의 품성을 극구 칭찬했으며 그가 이조판서로 있을 때 곽은의 자손을 불러서 벼슬을 주기도 하였다. 추강 남효온도 그의 참된 덕을 찬양하였고 우암 송시열은 묘비문을 지어 받쳤다. 2005년 5월에 담양군은 용촌 곽은 선생의 선정을 기리는 추모기념비를 세웠다. 담양의 연동사와 옥천군 이원면 강청리의 창주서원에 제향되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지은 묘비문은 아래와 같이 용촌 곽은 선생의 청덕함을 예를 들어 소개했다. “관아에서 장사를 모시고 돌아가는 날에 거리에 울음소리가 귀로 이러지고 사민(士民)이 서로 의논하여 해마다 기일이  돌아오면 쌀을 모아 제사를 베풀어 명복을 빌었다”라고 하였으며 <가승>에 또 이르기를 “생선장수들이 그 경내에 들어가지 않으며 말하기를 담양 백성들이 반드시 고기를 먹지 않으리라” 하였으며 증손녀 사위 오행민이 일찍이 남쪽을 여행하다가 몇몇 사람을 만났는데 서로 말하기를 “내일은 곽 모의 기일이라”하니 내일은 곧 12월 17일이라, 오래되어도 더욱 잊지 못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하였고 또 이르기를 ”공의 상여가 이미 돌아갈 때에 사무실 집기 등을 모두 되돌렸는데 홀로 헌 상자 하나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남겨진지라 부인이 보시고 크게 놀라 이르기를 “이 물건이 어찌 여기에 있느냐?” ‘빨리 되돌려 놓아 부장의 청덕에 누가 되지 않게 하라‘ 하였다.

용촌 곽은 선생의 묘는 옥천군 이원면 강청리 동림산 기슭에 신씨 부인과 합장하였다.

곽시 문장가, 증손 곽자방 충신

그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곽지한은 진사, 차남 곽지병은 만호, 셋쩨 곽지정은 생원이다. 손자 곽시(郭詩)는 중종 때 문신이며 성리학자로 문장가이며 관직은 승문원 정자를 지냈고 1522년(중종 17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539년(중종 34년) 별시 문과에 합격했다가 옥천군수가 베푼 축하연에 갔다가 급서했다.

 그리고 증손자인 곽자방은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 선생의 의병진에 참가하여 참모장을 하면서 금산싸음에서 조헌 선생과 함께 순절한 충신으로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에 충신문이 내려졌다. 우암 송시열 선생의 외할아버지이고 이원 구룡리 송시열 선생유허비 동편에 충신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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