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표 옥천향토전시관장의 역사속 옥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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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표 옥천향토전시관장의 역사속 옥천 인물
  • 전순표 옥천향토전시관장
  • 승인 2023.10.0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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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흠 선생 시 ‘가산 가는 길’ 

 송명흠 선생이 지은 ≪가산 가는 길(佳山途中)≫이란 詩를 감상해 보자. 

아득한 지경을 새벽에 가다보면 /거친 산모퉁이가 출몰하고 /맑은 날 구름이 피어오르고 하늘에 빗방울이 떨어지며  /냇가로 돌면 어두워지고 번개가 친다 /한가로이 사는 마을은 이미 병이 되었고  /그윽한 곳에서 눈이 다시 열리네  /멀리 세 신선을 기억하며 /동녘에 노을 질 때 내가 왔다네

 가산(佳山)이란 곳은 조선 후기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송명흠(宋明欽) 선생이 살았던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 진걸 마을에서 금강 건너서 북쪽편의 높은 장고개 너머 깊고 깊은 산골이다.  

가산 산골은 조선시대에는 옥천군 안내면 가산리(현재 답양리)로 가산천이 흐르고 천년고찰 가산사가 있는 아름다운 심산유곡을 말한다. 송명흠 선생과 동생 한정당 송문흠 선생께서 1728년(영조 4년)에 가산사에서 한때 독서(공부)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에는 열두 가산 골짜기마다 12개 마을이 각각 자리했다. 현재는 행정리가 안내면 답양리이며 가산천 하류, 채운산 계곡에는 전통사찰인 천년고찰 가산사(佳山寺)가 자리하고 있다. 가산사는 임진왜란 때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싸움에서 순국한 의승장인 영규대사와 의병장 중봉 조헌 선생의 영정을 모신 호국사찰로 가산사의 영정각과 산신각은 충청북도 기념물 제115호 문화재이다.

용호산수기, 옥천금강 산수를 노래 

 옥천 금강을 노래한 용호팔경과 용호산수기(龍湖山水記)는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와 용호리 일대 금강의 아름다운 산수와 절경을 노래한 조선 후기 진걸에 살았던 영조 때 당대의 대유학자 늑천 송명흠의 『늑천집』에 근거한다. 이 「용호산수기」에서 우리는 조선시대 유교의 가치 녹아 든 주자학적 선비문화를 알 수 있다. 또 송명흠 선생의 동생으로 군북면 석호리 진걸에 살며 조선후기 최고 서예가였던 송문흠 선생이 있고 그는 『한정당집』을 남겼다.

 송명흠 선생은 1721년(경종 1년) 신축사화 때 아버지와 함께 옥천군 군북면 도곡(석호리 진걸)과 대전 송촌(회덕)에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다. 호는 늑천(櫟泉)이며 자는 회가(晦可), 본관은 은진 송씨이며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손자인 금산군수 송요좌의 아들로 1705년(숙종 31년)에 서울 제생동에서 출생했고 어릴적부터 영특했다 .
 

신축사화로 옥천 석호리 진걸 낙향
 

경종 때인 1721년 신축사화(辛丑士禍)가 일어나자, 아버지 묵농공 송요좌도 폐해를 입어  송명흠은 아버지를 따라서 낙향하여 금강이 흐르는 옥천군 강마을인 군북면 석호리 도곡(진걸) 마을에 살면서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1739년(영조 15년)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세자 가르침에 공로가 커서 공릉참봉을 제수했는데 나기지 않았다. 1746년에 시강원 자의를 제수 받았고 1749년(영조 25년) 세자를 대리하여 별유를 내려 불렀고 1750년에 익위사 종부주사를 하다 얼마 후 충청도사와 사헌부 지평, 장령을 거쳐 정3품인 군자감정에 올랐다.

 1754년(영조 30년)에 특별히 서연관을 임명했는데 나가지 않고 1755년 옥과현감에 제수되었고 이어서 동궁에 들어가 세자에게 대학을 강론했다. 이 해 극심한 흉년들었는데 이때 송명흠선생은 창고를 풀어 백성을 구휼했다. 1760년(영조 40년) 찬선으로 경연관이 되어 정치문제를 논하다 파직되었다.

 만년에 옥천 군북 진걸(도곡)과 대전 송촌에서 살다가 1768년(영조 44년)에 63세의 생을 마쳤다. 시호는 문원공(文元公)이며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묘소는 충남 세종시(옛 연기군) 부강에 위치하고 유고집으로 『늑천집』 10책이 전하며 경남 함양 성천서원에 제향 되었다.

 영조 때 노론을 대표하는 학자이고 정조대왕의 스승이며 미호 김원행과 함께 도암 이재 선생의 수제자였다. 송명흠은 세자시강원으로서 목숨 걸고 만류하다 영조의 미움을 사 파직 당하여 낙향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원공(文元公) 유고집은 ≪늑천집≫이 있다.

수제자 손대창 효자 밭 매면서 공부

 그의 제자로 옥천 석호리 진걸 마을에 살았던 손대창(孫大昌) 효자가 있는데, 이곳 진걸 마을은 밀양손씨 집성촌이다. 손대창 효자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기 위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부모 봉양하였다. 손대창 효자는 밭을 매면서도 사서삼경을 손에 놓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한 유생으로 옥천의 지방 유림들의 조정에 알려 효자로 정려되어 효자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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