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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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작가
  • 승인 2023.10.0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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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것들
「석류·감시·유자」 가 보고 싶어
옥천군 정지용생가 옆 위치한 정지용시문학관 야경
옥천군 정지용생가 옆 위치한 정지용시문학관 야경

 강진골에 감은 익기 전부터 달며 현해탄을 건너와 잘 자란다. 석류도 시디신 줄 알았더니 달디 달단다. 여닐곱 살 된 아이 주먹만한 유자는 쩍쩍 벌어져 잇몸을 드러내고 있다. 괴팍스러워 보이지만 천하지는 않아 보인다고 정지용은 말했다. 

그러나 영랑 생가를 찾았을 때는 정지용이 다녀갔던 그때 그곳이 아니었다. 전에 왔을 때도 비가 왔다. 이곳만 오면 비가 온다. 아니 나는 비가 오는 날만 골라 이곳에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 오는 날 과꽃이 머리를 숙여 온 몸으로 비를 맞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추웠다. 우산을 들고 있는 손이 시렵다. 시린 손 안에 우산 대공이 바람에 흩어지려 한다. 더 세게 잡았다. 그래도 우산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려 한다. 

과꽃은 가끔 머리를 흔들고 빗방울을 삼켰다. 한참을 바라보니 다시 삼키고 내뱉는다. 조르륵 꽃잎 사이로 빗방울이 삐져나온다. 흡사 현재의 과꽃이 과거를 삼키듯. 그렇게 슬픈 전설을 빗소리에 전한다.

‘과부꽃’이라는 ‘과꽃’의 우수에 젖을법한 이야기를 꽃으로 견뎌낸 이 꽃의 유래가 떠오른다. 이 꽃을 보니 잊고 있었던 이야기가 기억된 것이다.

백두산 기슭에 추금이라는 예쁜 과수댁이 살고 있었다. 과수댁은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이 평생 아끼고 가꾸던 꽃을 가꾸며 일과를 보냈다. 추금이는 워낙 깔끔하고 아름다운지라 중매쟁이들의 재혼 권유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추금이의 마음이 흔들렸는지 남편이 꿈에 나타났다. 

남편과 추금은 꿈속에서 몇 년을 살았다. 정말 꿈같은 세월을 보냈다. 꿈속에서도 꿈이 아니길 바라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바위에 핀 꽃을 꺾으러 갔다. 그러나 남편은 그 꽃을 꺾다가 바위에서 떨어졌다. 추금은 그 광경을 보고 잠을 깨서 밖으로 나가 보았다. 뜰 앞에 가꾸던 흰 꽃이 달빛을 받아 수줍게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추금은 그 꽃을 보며 남편 꽃이라 여겨 수절을 하였다. 중매쟁이의 모든 재혼 권유도 듣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꽃을 ‘과부의 꽃’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석류와 감시 그리고 유자가 뜬금없이 보고 싶어진다. 그때 정지용이 보았다는 석류와 감시, 유자는 지금 볼 수 없었다. 나는 그것들을 이곳에서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움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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