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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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7)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10.05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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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유일하게 우리 대학만이 복지부 특별회계에 묶여 병원장이 학장직을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간호계에서는 간호대 교수가 학장직을 맡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NMC 학장직이 차관급 교육공무원이었기에 모든 역대 원장들이 학장직을 향유 해왔다. 차관급으로, 대학의 기관 장으로서 원장과는 또 다른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학장직은 더더욱 놓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90년과 99년에 내게 주어졌던 학장취임 기회는 대학의 위계 질서와 그때 상황에서 대학 발전을 위한 나 홀로 내린 최선의 결단으로 장관님의 인사명령도 거부하면서까지 사심 없이 고사했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겸직 금지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간호학 교수에게는 절대로 학장직을 내줄 수 없다는 의사의 비뚤어진 우월감과 이기심에서 비롯된 인사 결정은 좌고우면할 것 없이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 긴 세월 간호의 자존심과 간호학 교수로서의 자존감을 철저히 지켜오며 살았던 내가 간호의 자긍심을 접으면서 대학 발전과 병원과의 관계라는 큰 차원에서 두 번이나 학장직을 포기하면서까지 순리에 따르자고 자신을 다독여온 나로서는 이 상황이 모욕감 과 일종의 배신감으로 느껴졌다.

나는 양보할 때는 확실하게 양보하지만 그게 아니다 싶을 때는 누구보다 강고하고 일관되게 내 길을 밀고 나간다. 바로 이런 경우였다. 나는 당시 대한간호협회 김화중 회장을 만나 간호계의 지원을 끌어냈고 김 회장님은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나는 곧바로 복지부 차관 승진설이 있던 기획관리실장을 만났다. 나는 기획실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NMC 간호대학은 아시다시피 과거 스칸디나비아 3국이 합작해서 만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우수한 간호대학이었음은 간호계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렇게 전국에서 수재들이 모여든 최고의 간호대학을 스칸디나비안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자국으로 철수하면서 복지부에 인계하고 간 후부터 병원도 학교도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 다. 복지부 특별회계로 운영되어온 국립간호대학을 복지부가 그간 얼마나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아왔는지는 나보다 복지부가 더 잘 알 거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NMC가 갈수록 과거의 영광만을 회상하는 병원과 대학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복지부의 책임이다. 그런 복지부가 올해 겸직 금지법을 시행할 생각은 않고 병원 의사들이 원하는 대로 원장은 안 되니 꿩 대신 닭이라는 편법으로 대신 의료부장을 올리 면서까지 학장 자리를 차지하려는 획책을 그대로 수용해서 교육부에 보낼 수 있냐, 간호대학 발전과 학장 분리 건에 관해 잠깐이라도 제대로 고심해보았다면 당연히 겸직 금지법의 목적과 취지에 맞게 복지부에서 학장직은 간호대학 교수가 해야 한다고 병원에서 올린 안을 단호히 거부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우리 대학이 설립 당시부터 원장이 학장을 겸직해온 지가 42년이나 되었으니, 이제 새로운 법에 따라 학장은 복지부가 나서서 제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 그동안 복지부가 간호대학 발전을 방치해 온 잘못에 사죄하는 뜻에서도 이번 학장 건만은 반드시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숨도 쉬지 않고 기획실장에게 주문했고,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한 실장도 전적으로 동의해주었다.

“잘 알겠다. 내일 차관과 장관님을 바로 만나 이 건만은 반드시 요청한 대로 해결하겠으니 좀 기다려 달라.”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부에서도 복지부와 협의가 잘 끝났다며 간호대학 교수 중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한 2인을 복수 추천하라고 하는 연락이 왔다. 학장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나는 즉시 교수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선거에 들어갔다. 선거 결과 나를 제외한 모든 교수가 100% 나를 찍어 학장으로 선출되었다. 참으로 무거운 영광이었다. 많은 선임 교수들이 있었음에도 내가 학장으로 선출된 것은 내게는 명예이자 멍에였다. 과거에 학장 말이 나올 때마다 내가 제일 선배 교수인 박 교수님을 추대했었던 이유가 있었다. 박 교수님은 개인적으로 나를 인정해서 81년 마지막으로 세 번째 NMC에 나를 다시 불러준 분이셨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고 내가 무슨 일이든 진심으로 잘해드리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내심 첫 학장은 박 교수님이 되어야 한다는 일관된 생각을 했었다. 또 나는 교수님이 학장 자리에 누구보다 욕심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교수님보다 내가 앞서 학장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민되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교수님은 내게 노골적으로 섭섭함을 표하며, 내가 학장이 된 후로 이전까지 좋았던 관계가 불편해지고 말았다. 나는 바로 이런 상황을 예상했기에 과거 90년, 99년 두 차례에 걸친 학장선임 기회도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직접투표를 통한 선출이었기에 양보나 거절을 할 게재가 아니었다. 그 후 NMC 두 선배 교수와는 학장이 먼저 된 죄로 몹시 불편한 관계로 발전해 갔고 내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어쨌든 그늘진 내부 사정과 관계없이 42년 만에 원장이 겸직하던 차관급 학장 자리에 내가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8월 4일 자 임명장을 받아 첫 학장으로 취임하게 되는 역사적 순간이 왔다. 이 사실은 국내 간호계에서도 큰 뉴스거리였다. 「간호사신문」은 물론이고 각 일간지 동정란에 게재된 한편, 조선일보에는 1면에 ‘국립의료원간호대학 학장 송지호(宋志鎬)’라고 크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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