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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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이정표
  • 김묘순 충북도립대 겸임교수
  • 승인 2023.10.1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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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락(離家樂)」의 진정한 즐거움은

집을 떠나는 즐거움은 흡사히 집을 찾아드는 것과 같이 즐거움이라 하였다. 

정지용은 1913년 기탄잘리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시인의 작품을 기억하고 있다. 어린 아기가 초사흘 달나라에서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하였다. 하지만 엄마 품에 안겨 우는 부자유가 그리워 이 세상에 내려온 것이란다. 완전한 자유보다 사랑에 사로잡히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하였다.

여행을 떠나보자. 집을 떠나는 홀가분함은 여행갈 준비를 하며 짐을 꾸릴 때뿐이다. 필요한 준비물을 싸고 또 빠진 것이 없나 돌아볼 때의 설렘. 그 설렘으로 즐거움을 상상하고 그려본다. 즐거울 것들도 생각해 본다. 행여 다른 사람이 불편해지지 않을까 걱정도 하며 남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생각도 해본다. 주의해야 할 점도 체크한다. 

가족이 정지용의 제주도행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모두 모였다.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한 큰아들, 대학 1학년인 둘째까지 모여 배를 타기로 했다. 여행단장은 남편이다. 남편은 서너 달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배를 예약하였다. 나는 정지용이 김영랑과 여행한 발자취 그대로 따라가겠다고 남편에게 주문했고 그는 그 주문을 성실히 이행해주려고 노력하였다. 

우리 셋은 굴비 두릅처럼 줄줄이 남편이 시키는대로 따라간다. 새벽 2시에 출발해 호남고속국도를 지나 정읍에서 서해안고속국도로 바꿔간다. 길을 모르는 우리들에게 길안내 서비스는 상냥히 잘도 안내한다. 

처음 보는 이정표들. 낯선 길. 흡사 밤의 별들처럼 반짝이며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들이 참 신기하게 다가온다. 우리 차도 그 별들 중 하나가 되어 빛을 내며 달리고 있다.

선운사 이정표를 지난다. 

선운사에서 결혼했다는 어느 수필가를 생각한다. 이곳을 그리며 몇 번이나 선운사를 이야기하던 이마가 시원한 수필가. 

바람처럼 훠이훠이 내 집을 다녀가며 “묘순아 또 오께. 내 딸!”하며 손을 흔들어 주던 어머니처럼 다정하셨던 분. 고개가 선운사 이정표를 쫓는다. 이정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이정표를 놓치고 만다.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잠들었나보다. 

부모님과 동행이 썩 내키지는 않을 수 있는 나이. 그러나 군소리 없이 동행해주니 참 기특하고 고마운 일이다. 

가만가만 소리가 들린다. 쌕쌕거리며 자는 숨소리다. 

저 숨소리는 내가 살아있음의 신호고 그들의 삶의 신호다. 이렇게 힘차고 고요한 희망의 리듬은 집을 떠나 여행을 할 때 들리는 벅찬 감동이리라. 

밀려서 1등 「해협병(海峽病)(1)」은 미련보다 후련함을 앞세우고

목포의 새벽은 희뿌연 안개를 물고 있다. 

  새벽 2시부터 밤새도록 달려온 목포의 아침은 안개 사이로 햇살을 숨기고 민낯을 내밀었다. 뱀 등허리처럼 늘어선 선적을 기다리는 차량들. 그 사이로 우리 차도 뱀 비늘의 일부처럼 그들 속에서 우물거렸다. 

  아침 5시. 차량을 선적하고 항구 앞 백반집에서 먹은 조반은 육지의 나뭇잎 같은 녹색 냄새는 나지 않았다. 육지에서 일상 먹던 밥이 지니는 그 맛과 사뭇 달랐다. 가랑잎 같은 맹랑한 맛이다. 쓰지도 달지도 짜지도 않은 맹한 맛. 그 맛을 등지고 대합실로 갔다.

대합실은 벌써부터 사람들로 빼곡하다. 화장실에서 아침 세수를 마쳤다. 우리도 군중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뒤섞였다. 그리고 이내 잠을 청했다. 이곳에서는 의자에서 자지 않으면 이상할 것 같은 분위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혹은 의자에 길게 누워서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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