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봉(李玉峰)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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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봉(李玉峰)을 아시나요?
  • 박우용 기자
  • 승인 2023.11.3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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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벽면현청우(終南壁面懸靑雨) 종남산 허리에 푸른 빗줄기 걸렸네
자각비미백각청(紫閣비微白閣晴) 이쪽엔 빗방울 날리건만 저쪽은 맑게 개었네
운엽산변잔조루(雲葉散邊殘照漏) 구름 흩어진 사이로 햇살이 새어 나오니
만천은죽과강횡(漫天銀竹過江橫) 하늘 가득 은빛 댓가지 강을 가로지르네" 
               (이옥봉 '비(雨)' 전문)

허균은 자신의 책 '성수시화'에서 옥봉의 시를 보고 감탄해 평하기를 "기발하고 고와서 분내를 단번에 씻었다"며 자신의 누이 난설헌의 작품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의아한 것은 옥천군 이나 옥천예술단체나 문학단체 에서는 옥천의 시인 정지용, 동요작곡가 정순철은 조명 하고 있으나, 옥천 출신이며 조선시대 대표적 여성 시인 중 한 사람인 이옥봉은 어쩐일인지 안개에 가려져 있다. 

천부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생을 살다 간 조선 중기 시인 이옥봉의 삶을 많은 인문학인 들이 고증을 거쳐 시비도 세우고, 당시의 옥봉 시를 연구하고 있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그의 삶과 문학을 다룬 장정희 작가의 장편소설 까지 출판 되었는데도 말이다. (참고:무등일보 신춘문예 출신 장정희 작가 장편소설 '옥봉'(도서출판 강).
충청도에서 왕족의 후예, 이봉의 서녀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몹시 총명했다. 옥천의 군수이자 제법 문학적 명성이 있던 이봉은 딸아이와 놀이하듯 시를 주고받았고, 옥봉이 조금씩 천재성을 드러내자 딸의 시 공부를 위한 책을 아낌없이 지원해주었다. 어엿한 처녀가 되어가면서 옥봉은 자연스레 자신만의 시풍을 갖추게 되었고 장안의 명사들과 어울리며 뛰어난 시를 읊어 유명인사가 된다. 그러다 옥봉은 조원이라는 선비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진다. 본래 옥봉은 서녀라는 자신의 신분 때문에 결혼을 기피했었지만, 조원을 알게 된 후 스스로 남편을 택하고 첩살이를 자청한 것이다.

옥봉은 조원의 소실로 들어가 사는 조건으로 '함부로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파당의 시대에 행여 여성이 집안에 해가 되거나 누가 되는 글을 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한 편의 시로 사람을 구하고 연분을 잃은 이옥봉 일화

남편이 소도둑으로 잡혀갔다는 말에 산지기의 아내는 절망했다. 어찌하면 좋을지 시름시름 앓던 그녀에게 한 줄기 빛이 떠올랐다. 시 읊는 걸 즐기는 옥봉이라면 억울함을 풀어줄 글을 써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늙은 아내는 난처해하는 옥봉의 치맛자락에 간곡히 매달렸다. 옥봉 역시 파렴치한 아전들이 소를 잡아먹고는 다른 이에게 죄를 씌운 걸 짐작했지만 글을 쓰지 않기로 한 남편과의 약조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산지기 아내는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며 애원했고, 그 절실함에 결국 옥봉은 붓을 들고 만다. 절필한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옥봉이 써 준 문장을 통해 산지기는 결국 누명을 벗고 관아에서 풀려났다. 그의 아내에게 ‘이 몸이 직녀가 아닌데 낭군이 어찌 견우시리오?(妾身非織女 郎豈是牽牛)’라고 적은 시를 주었는데, 첩의 신세가 직녀가 아니므로 ‘견우(牽牛)’ 즉 소를 끌어간 사람이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는 말로 죄가 없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한 편의 시가 관가의 사법 판결을 뒤바꿨던 이 ‘필화사건’을 가능케 한 재치 있는 솜씨의 주인공은 조선 명종 때의 인물인 이옥봉이었다.

그러나 억울하게 누명을 쓴 이웃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대신 소장을 써주게 되면서 옥봉은 임란 직전 남편으로부터 쫓겨났다. 조원의 태도가 어느 쪽이었든지 옥봉은 결국 시를 썼다는 이유로 쫓겨난다. 소실이긴 했지만 여자의 시가 여러 사람에 의해 회자되는 것도 마땅치 않고, 사대부의 눈에 똑똑한 여인은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옥봉은 울며 사죄했지만 조원은 끝내 그녀를 다시 보지 않았고, 평생토록 남편을 그리며 시를 짓던 옥봉은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그 후 조선은 전란에 휩싸여 이옥봉의 종적 또한 묘연해졌고, 그로부터 40여 년 후 조원의 아들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대신으로부터 『열조 시집』을 받아본다. 수십 년 전 중국 동해안에 온몸을 종이로 수백 겹 감고 노끈으로 묶은 여자의 괴이한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는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감겨있던 종이에 적힌 글은 모두 빼어난 작품이라 책으로 출간했고, 명나라 사람들은 극찬을 하며 오래도록 애송했다고 한다. 남편에게 돌아가지 못한 서러움 때문에 자신이 쓴 시 수백 장을 온몸에 감고 바다에 뛰어든 이옥봉. 시와 함께 죽음을 택했던 서글픈 말년이 가슴을 울리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平生離恨成身病(평생이한성신병)평생 이별의 한이 병이 되어
酒不能療藥不治(주불능료약불치)술로도, 약으로도 못 고칩니다
衾裏泣如氷下水(금리읍여빙하수)이불 속 눈물 얼음 아래 물 같아
日夜長流人不知(일야장류인부지)밤낮을 흘러도 사람들 모르리라

조선시대 중기 허난허설과 쌍벽을 이루던 옥봉 그녀가 남긴 훌륭한 작품들이 옥천 우리곁에 돌아오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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