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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구 수필가
  • 승인 2024.02.0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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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를 나타내거나, 사람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를 “결”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예컨대, 비단결, 숨결, 바람결, 머릿결, 결이 좋은 나무 등이 그렇다.

생명체가 살이 있음을 나타낼 때나 어떤 생명체를 지칭할 때 ‘숨결’이라는 말을 쓴다. 이 ‘숨결’이라는 말은 희망적이며 앞으로의 진취성을 나타낼 때 쓰인다. ‘아기의 숨결’, ‘내쉬는 숨결마다 허옇게 김이 서리고’, ‘대지의 숨결’, ‘자연의 숨결’, ‘파도가 거센 숨결로 밀려와’ 등의 표현을 보면 살아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된다. 한편 ‘결’은 ‘때’, ‘사이’, ‘짬’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이는데 ‘어느 결에’, ‘자기도 모르는 결에’ 등과 같이 의존 명사로도 쓰이는 순수한 우리 말이다.

이 ‘결’이 한자 ‘기(氣)’와 합쳐서 된 ‘결기(결氣)’라는 말은 ‘못마땅한 것을 참지 못하고 성을 내거나 왈칵 행동하는 성미’, ‘곧고 바르며 과단성 있는 성미’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역사 소설이 등에서는 결기 있는 행동이 곧잘 옳지 못한 일에 대항하는 굳센 의지의 행동으로 묘사되곤 한다. 

조선시대 실학자 박지원이 지은 풍자소설 양반전(兩班傳)에는 온갖 탐관오리의 부패 행위가 양반이 하는 것이라는 말에 양반을 사고자 했던 부자가 증서를 중지시키고 혀를 내두르며 “그만 두시오, 그만 두어. 맹랑하구먼. 장차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인가” 하고 머리를 흔들고 가버리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바로 옳지 않은 일에 대한 결기 있는 행동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회적인 리더들이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Noblesse Oblige를 요구하게 된다. 또한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그들의 과감한 ‘결기(결氣)’를 바라게 된다. 어찌 보면 도덕적 판단의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생각하지도 못하거나 정신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변명으로 얼떨결(뜻밖의 일을 갑자기 당하거나, 여러 가지 일이 너무 복잡하여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는 판)을 사용하고, 그런 순간이나 시간을 나타낼 때 엉겁결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래서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변명하거나 하소연할 때 혼잣말처럼 쓰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변명이 이해되고 받아들일 만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값없는 변명이 될 때 세인의 웃음을 사고 빈축을 사게 된다. 특히 어른들이 어린아이 같은 변명을 일삼으면 신용을 잃게 된다.

교수들이 뽑은 2023년의 사자성어가 ‘견리망의(見利忘義)’란다. 견리망의는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었다’란 뜻이라고 한다. 2위는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이고, 3위는 ‘피리를 불 줄도 모르면서 함부로 피리 부는 악사들 틈에 끼어 인원수를 채운다’는 의미의 ‘남우충수(濫竽充數)’가 선정됐다고 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의리를 저버리는 행동이 어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도둑이 매를 드는 사회, 자질도 부족한 사람이 뒷배가 좋아 한 자리 차지하는 사회 – 일반 서민이 생각하는 삶의 양상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들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그 잘못을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도 하다. 올해는 갑진(甲辰)년, 청룡의 해이다. 용이 도(道)를 깨우치면 비늘이 푸르게 변해 청룡이 된다고 한다. 구렁이가 흠결이 있으면 용이 되지 못하고 이무기가 된단다. 용의 해, 출발점에서부터 결이 좋은 삶을 꾸려 나갔으면 좋겠다. 결기(결氣) 있는 삶으로 비록 소소한 서민의 삶이라도 믿음을 주고, 의로움을 세우는 멋진 삶이 구현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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