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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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35)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2.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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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원하던 4년제 대학 이 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만일 우리 대학이 서울에 있는 여자대학교와 통폐합을 한다면 교수들 생각은 어떠냐? 물론 정해진 것은 아니고 의견수렴 차원이다. 그리고 만일 반대한다면 없었던 일로 할 것이고 그 대학과 통폐합이 된다면여러분은 교육 공무원 옷을 벗고 사립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니 심사숙고해서 말해달라.” 교수들은 즉석에서 모두가 공무원 신분을 포기하고 내가 하는 대로 믿고 따르겠다는 한목소리에 나는 더욱 책임감을 느꼈고 어렵지 않게 전원 의견일치를 보았다.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성신 재단 이사장과 이상주 총장을 함께 만나 더 구체적인 통폐합 방안을 논의했다. 교육부총리 출신인 이상주 총장에게는 절대로 교육부에 이 건으로 먼저 전 화해서 부탁하지 말고 내게 맡겨달라고 했다. 특정 사립대학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 오해하게 되면 일이 더 어렵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사장, 총장과 어느 정도 합의가 진행된 다음 나는 1, 2,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년별로 직접 성신여대와의 통폐합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3개 학년 학생 전원이 NMC가 4년제 대학이 되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하여 적극 찬성했다. 다음은 동문 의견수렴도 거쳤다. 최규옥 당시 총동문회장을 만나 설명했고, 쾌히 동의했다. 그런데 동문을 모아놓고 설명을 하는 도중 한 동문이 서울산업대학교로 가면 국립대학끼리 통폐합인데 왜 사립인 성신여대와 하느냐며 물었다. 그 순간 이 문제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다. 동문 입에서 산업대학교 얘기가 나온 것은 심상찮은 일로 학장 주장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통폐합 대상으로 성신을 염두에 두고 나는 교육부 담당 과장을 만나 상의했다. 그 자리에서 성신여대와 산업대학교 중 어디가 좋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성신을 권했다. 그 이유는 4년제 대학을 원하는 NMC가 일반 종합대학교인 성신과 통폐합하는 것은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하다고 했다. 


 그 당시 서울산업대는 일반 종합대학교가 아니라서 산업대도 교수와 동문이 일반대학교로 승격하기 위해 계속 교육부를 상대로 노력을 하고 있는 대학으로서 정규 일반대학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였다. 쉽게 말해서 산업대학은 전문대학과 일반대학교의 중간 형태로서 한 번의 과정을 더 거쳐야 일반 4년제 대학교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김 학장을 비롯해 교수들에게 이러한 이유로 산업대는 우리 협상 대상에서 당연히 배제할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 의견에 모든 교수가 동의했다. 그러나 학장은 계속 산업대와의 통합을 주장했다. 
 산업대가 통합 대상의 결격사유가 분명함에도 계속 산업대를 주장하는 학장에게 화를 참고 몇 번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반복해서 설명했다. 그런데도 일부 동문까지 산업대를 들고 나왔으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학장은 산업대가 국립대인 점을 들어 산업대로 가야 한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오히려 주변을 설득했다. 그러자 산업대의 정체성을 잘 알지 못한 일부 학생과 동문들은 국립대를 두고 사립대인 성신과 통합하려는 나를 거꾸로 의심하기도 했다. 인내에도 한계를 느낀 나는 학장에게 “남은 학장 임기 2년 채우고 가자는 얘기인데, 국회 1년 예산 더 받을 때 약속은 어쩌고 또 누가 2년 세월을 기다려준답니까?”하고 정곡을 찔렀다. 그러나 많은 교수들과 최규옥 동문회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문들은 나를 신뢰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줌으로써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또 굽힘 없이 한 길을 갈 수 있었다. 김 학장이 2005년 2월에 발령을 받았으니 4년 학장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통폐합이 될 상황이었다. 


 따라서 NMC가 국립인 산업대로 가면 학장직이 그대로 인정되어 4년 임기를 마칠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산업대 문제로 내부에서는 많이 시달렸고, 결국 동문을 설득해서 성신으로 결정하기까지 말 못 할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심지어는 반대로 내가 학장을 하려고 성신으로 가려 한다는 소문까지 내 귀에 들어왔다. 참으로 참기 힘든 아픈 대목이었다. 그래도 큰일을 위해서는 이 정도 아픔은 삼켜야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대와 사립대와의 통폐합을 시도하다 

교수, 학생, 동문으로부터 어렵게 의견수렴을 마치고, 성신 이사장과 총장을 다시 만나 일단 통폐합은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전례가 없는 국립대와 사립대 간의 통폐합을 교육부에서 허가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교육부 대학정책과를 찾아가 성신과 의 통폐합 문제를 꺼냈다. 예상대로 담당 과장은 국립대와 사립대간 통폐합은 우리나라 어떤 법률에도, 규정에도 없는데 대체 어떤 법을 근거로 할 수 있겠냐며 펄쩍 뛰었다.


 만일 이를 허가해주면 교육부가 성신에 특혜를 주었다고 본인이 감사원 감사에 걸릴 게 분명하기에 절대 안된다고 못 박았다.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궁리 끝에 교육부 구조조정 본부장을 찾아갔다. 교육부에 구조조정 본부가 발족하여 처음 시행한 동일 재단 내 대학과 전문대학 간 통폐합 심사위원으로 2003~2004년 2년간에 걸쳐 고려대, 가천의대, 을지대, 삼육대, 경원대를 구조조정하는 동안 나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일했던 구조조정본부였다. 사무관, 과장, 국장을 차례로 만나 설득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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