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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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충북도립대 겸임교수
  • 승인 2024.03.1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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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서)
그는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관서와 관북의 기생은 한양으로 데려오지 못하는 ‘양계의 금’이란 조선시대의 법에 걸려 그는 가련을 한양으로 데려갈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이광덕은 “벼슬에서 물러나 너를 부를 것”이라고 말하고, 가련은 “나리만을 기다리겠다.”고 다짐하였다. 
가련은 한관령까지 울면서 배웅하였고 이광덕은 한양에 간 지 얼마 안 되어 죽고 말았다. 그녀는 제사상을 차려놓고 ‘출사표’를 서럽게 부른 뒤 자결하였다. 여러 해가 지났다. 이때 어사 박문수가 이 이야기를 듣고 ‘함관여협가련지묘(咸關女俠可憐之墓)’라 새겨주었다. 이광덕은 아우 이광의를 변호하다 유배되었고 이때 가련을 만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슬픈 사랑이야기는 듣는 이에게 지금도 애절하고 가슴 저리게 전하고 있다.

16. 세르팡 
「진주(晋州) 3」에서 5일 연재분의 원고를 썼다는 곳이 

지금 진주에는 양화가 C씨가 운영하였다는 ‘세르팡’ 다방은 없었다. 당시 정지용은 이 다방에서 5일 분량의 원고를 썼다고 한다. 

‘세르팡(Serpent)’이란 관이 휘어서 뱀처럼 생긴 옛날 관악기를 이른다. ‘뱀’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일본의 유명잡지 이름이기도 한 ‘세르팡’은 발음이 서구적이어서 그런지 이 상호가 1900년대 작가들의 작품 곳곳에 나오기도 한다. 

유진오(1906~1987)의 「김강사와 T교수」(1935)에도 ‘세르팡’이라는 찻집이 등장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동경제대를 졸업한 김만필은 H과장의 소개로 S전문학교 독일어 시간강사가 된다. T교수는 조심해야할 학생 등을 김에게 알려주고 김은 T교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김은 H과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과장집 앞에서 T교수와 마주친다. 과장 집에서 나온 T교수는 김과 차 한 잔을 마시길 권해 ‘세르팡’이라는 찻집으로 간다. T교수는 김이 쓴 ‘독일 신흥작가 군상’이라는 신문에 실린 글을 칭찬한다. 이 글은 좌익 작가를 다룬 글이라 학교에서 좋아할 리가 없어 김은 T교수를 두려워하게 된다. 어느 날 ‘스스끼’라는 학생은 김에게 문학자 박해 비판, 파시즘, 히틀러 등을 이야기하며 김의 과거도 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독일문학 연구 그룹지도를 부탁하나 김은 거절한다. H과장을 찾아가 새해 인사를 하라는 T교수의 말대로 김은 H과장 집에 갔다. 그러나 김은 과장으로부터 남의 얼굴에 똥칠해도 되냐는 욕을 먹는다. 김은 결백하다고 항변하는데 윗방에서 T교수가 비열한 웃음을 웃으며 나타난다. 조향래는 「문단의 로망스」에서 김춘수(1922~2004) 시인은 ‘수련별곡’이라는 시를 대구 동성로 2층 ‘세르팡’이라는 찻집에서 남겼다고 한다. ‘세르팡’이란 찻집 이름도 김춘수 시인이 지었다. 이 찻집은 1960~70년대 문인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이곳의 주인이 바로 수련별곡의 주인공인 배화여고 출신 권수련으로 알려져 있다.

세르팡에서 그는 ‘꽃’을 이야기하고 「수련별곡」을 써서 수련에게 주겠다고 하며 쓴 시라고 한다. 20대 초반의 수련과 마흔 중반 시인의 사랑은 대구백화점 지하 생맥주집에서 싹텄다고 한다.

수련을 남다르게 아꼈던 김춘수는 그녀에게 찻집을 차릴 것을 권했다. 그리고 계명대 미술과 편입도 주선했다. 김춘수가 ‘나의 나타샤’로 부르던 수련에게 그는 정신적인 지주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권수련과의 사랑이 담긴 시로 전해지는 김춘수가 쓴 「수련별곡」은 그녀와의 고왔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바람이 분다
그대는 또 가야 하리
그대를 데리고 가는 바람은
어느땐가 다시 한 번
낙화(落花)하는 그대를 내 곁에 데리고 오리
그대 이승에서
꼭 한 번 죽어야한다면
죽음이 그대 눈시울을 
검은 손바닥으로 꼭 한 번 
남김없이 덮어야 한다면
살아서 그대 이고 받든
가도 가도 끝이 없던 그대 이승의 하늘,
그 떫디떫던 눈웃음을 누가 가지리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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