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길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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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이 보여
  • 박미련 작가
  • 승인 2024.03.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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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에 이어서)
아버님이 밤잠 설치는 데는 이상기온 탓이 크다. 마른장마에 물길이 걱정이었다. 논도 타고 아버님 마음도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데 한낮에는 발만 동동 구를 뿐 할 수 있는 게 없다. 태양의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것에 노출되면 풀 죽은 파김치가 된다. 숨이 턱턱 막혀오고 햇빛의 현란한 퍼포먼스를 받아내지 못하는 아버님의 살갗은 거뭇한 반점을 우후죽순 만들어대었다.
아버님은 궁리 끝에 새벽길을 열었다. 마침 달빛이 좋아 시원찮은 시력도 문제 되지 않았다. 물길을 만드느라 자주 하늘로 올라간 곡괭이는 달의 초래기를 베어 물었다. 은은한 달빛을 묻혀온 곡괭이는 다시 땅으로 내리꽂혔다. 곡괭이로 땅을 흔들고 삽으로 흙을 퍼내고,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니 논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조붓한 길이 물을 만나니 더 큰 물길이 된다. 양수기의 도움으로 잠겨 있던 얕은 웅덩이 물이 제 길을 찾은 듯 분주하다. 서둘러 논으로 달려가는 광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갈라진 논에 스며드는 물을 보고 있노라니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흐뭇하다.

한참을 눈을 떼지 못하다가 아버님은 뒷걸음질 치듯 이제는 밭으로 향한다. 깨를 괴롭히던 질긴 풀들이 아버님 낫에 잘려나간다. 쏟아질 것 같은 참깨를 조심히 베어 가지런히 뉘었다. 새끼들 떨굴까 봐 불안하던 벙근 깻단도 허술한 집이나마 잠시 얼러두는 데 성공했다. 갈라진 논에 물길도 열고 불안한 깻단도 잠재웠으니 이제는 안심이다. 달빛을 동무 삼아 열 일한 농부의 가슴에 두둥실 큰 달이 떴다.

86세, 아버님은 건장한 청년이다. 가늘어 보이나 근육으로 채워진 팔이며 다리. 자식들과 일을 시작하면 아들의 허리는 절반도 버티지 못하고 하늘 올려다보기 바쁜데, 아버님은 지친 기색 하나 없다. 다부진 허리는 하루를 버티고도 남을 듯 곧다. 무안한 아들이 당신 걱정하는 투로 한마디 던지면 지난 시절이 쏟아진다. “간척지를 개간할 때는 맬여, 얼매나 추운지 동상을 달고 살았제.” 비켜 갈 방법이 없다. 애면글면 아버님 뒤를 따르다가 집에 돌아와 삼 일 밤낮을 앓더라도 무조건 직진이다. 

아버님은 시골에서 나고 농사로 생을 꾸렸다. 한눈판 적 없이 들과 밀어를 나눴다. 고비가 왜 없었을까. 대도시로 나갔던 친구들의 금의환향이 마냥 좋기만 했을까. 도시로 나가 가정을 꾸린 동생들이 “형은 부모 그늘에서 호강하지 않았냐.”고 대드는 역설에는 또 얼마나 맘이 시렸을까. 쳇바퀴 도는 다람쥐 신세가 답답하여 박차고 나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장남이라는 올무에 번번이 주저앉고 만 속사정을 그들은 알 리가 없다. 덕분에 융통성 있는 도회 생활을 알지 못한다. 네 것이 내 것이 되기도 하는 형이상학적 셈법을 모르고도 불편하지 않았다. 상식적인 수학 공식이 그의 인생을 지배했고 그것으로 해석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답답한 구석도 있다. 가끔 남편이 긴 한숨을 쉬는 것도 오랜 세월 아버님의 삶이 만든 궤적 때문이다. 누구의 잘잘못이 아니라 그가 건너온 세월의 지문 같은 거다. 남편도 몇 번의 갈등 끝에 그를 만든 환경을 탓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는다.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지 모르나 부자지간에는 그래도 지름길이 있다. 어쩌지 못하는 구석까지도 인정하고 서로의 일부임을 확인하는 지점에 난 좁으나 선명한 길. 게다가 한 해 한 해 살 때는 몰랐는데 세월이 묵어 역사가 되니 생각이 많이 바뀌기도 한다. 답답하던 아버님의 농사꾼 기질은 아집이 아니라 장인의 고집으로 비친다. 단순함을 넘어 순정한 사랑이 몸 이곳저곳에 배어 있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더 선명하게 전달되는 커다란 울림이다. 변함없는 그곳에서 여전히 들춤을 추고 있으리라는 믿음, 그것은 모진 바람에도 흔들릴 수 없는 명분이 된다. 끝내 그 길 위에 서 있게 하는 힘이고 위로다. 

“쌀 한 톨이 되려면 여든여덟 번의 보살핌이 필요한겨.” 그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고 틈만 나면 강조하신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도 없음을 진리로 알기에 달빛 아래서 쉬지 않고 들춤을 출 수 있는 게다. 고단하지만 후련한 뒷일이 오늘도 아버님의 걸음을 들로 향하게 재촉하나 보다. “내가 얼마를 더 살지 모르겠으나 땅이 놀고 있는 꼴은 참말로 못 보겠구먼.” 잡초 우거진 채 땅이 제 할 일을 잃고 늙어가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모양이다. 아버님의 세상이 계속되는 한 아버님의 땅도 그득한 알곡을 품어 기세등등하게 세상을 호령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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