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출신 대유학자 우암 송시열 선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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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출신 대유학자 우암 송시열 선생(4)
  • 전순표 옥천향토전시관장
  • 승인 2024.05.0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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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선생 사촌 형제 송시영, 송시형, 송시담

■사촌형 송시영 
 
병자호란 때 강화도 순국 충신
 
송시영(宋時榮) 충신은 조선 중후기 문신으로 자는 공선(公先) 혹은 무선(茂先), 호는 야은 봉사 송구수의 증손으로, 조부는 도사 송응기이다. 아버지는 좌랑 송방조(宋邦祚)의 장남이며, 어머니는 감정 정곡의 딸이다. 송시열 선생의 사촌 형이다. 어려서 부친에게 가르침을 받고 사계 김장생 선생의 문인이 되었다. 1588년(선조 21년) 출생, 1637년(인조 15년)까지 살았다.
송시영은 조선 인조 초기에 고향 유림들에 의해 학행으로 감사에게 천거되기도 했다. 1627년(인조 5년)에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동지를 모아 왕을 가까이서 보필했다. 이듬해 김장생 선생에 의하여 천거되어 사재감참봉, 봉사, 직장, 상의원주부를 지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명으로 강화도 도성에 들어가 피난했다.

이듬해 정월 1월 22일에 강화 도성이 청나라 군대에 포위되고 남문이 함락되자, 김상용, 홍명형, 심현, 이시직 등 충신과 함께 자결하였다. 이 해 충신문이 세워지고 좌찬성에 증직 되었으며 충현(忠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강화도 사람들이 충렬서원을 세워 김상용과 함께 제향하였다. 이밖에 회덕(대전)의 별도 사당과 충북 영동심천의 초강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충현사(忠顯祠)는 은진송씨 문중에서 건립한 송시영 충신의 사당으로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 에 있으며, 2015년 4월 청주시 향토유적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사촌형 송시형   
 
송시형(宋時瑩)의 주거지는 충청도 회덕(대전)으로 1592년(선조 25년)에 태어나 1638년(인조16년)에 생을 마쳐 47세를 살았다. 묘는 충청도 청주(청원) 사현리에 있다.

그의 아버지는 병조좌랑 송방조(宋邦祚)이고 양부는 송희조(宋熙祚)이며 어머니는 진주정씨 이며 양모는 파평윤씨 윤창세의 딸이다. 송시형은 5남 2녀 장남으로 동생은 송시염(宋時琰)과 송시담(宋時倓)이 있다. 누이 둘은 김자련(金自鍊)의 처와 윤장경의 처가 있다. 양아버지는 첨정 송희조(宋熙祚)이다. 

송시형은 4촌으로 숙부인 송갑조의 아들 송시희, 송시묵, 송시열, 송시도, 송시걸을 있다. 송시형의 부인은 파평윤씨 윤전의 딸이며 자녀는 4남을 두고 장남은 송기선(宋基善), 차남은 송기항(宋基恒), 3남은 송기명(宋基明), 4남은 송시열 선생의 양자인 송기태(宋基泰)가 있다.

•인조 때 이이의 문묘 제향 운동

1633년(인조 11년) 생원 진사 시험에 42세에 합격하였다. 성균관에 들어가서 공부하다가, 1635년(인조 13년) 그가 상소에서 맨 먼저 이름을 올린 소두가 되어 성균관 유생 2백 70여 명을 이끌고,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문묘에 배향하도록 청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이에 대해 조정안에서 송시열이 ‘변무소’를 통해 송시형의 주장을 두둔하였다. 그러나 인조는 그들의 도덕은 높으나 문묘에 종사하는 일이기에 경솔히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병자호란 때 척화 활동

1636년 사신 용골대가 청나라의 칸을 “황제”라 칭하라고 강요하자, 송시형이 성균관 유생들을 이끌고 ‘용골대를 즉시 참형할 것’을 강력히 상소하였다. 이때 그는 앞으로 전쟁을 예감하고 큰 형 사복시 주부 송시영(宋時榮)과 함께 가족들과 남쪽으로 피난 하려 하였다. 1636년(인조 14년) 청군은 압록강을 건너며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이때 송시형의 큰 형 송시영(宋時榮)은 강화도가 함락하자, 친구 이시직(李時稷), 송시형 장인 윤전과 함께 자결했다.

1637년(인조 15년) 인조가 송시형을 지조가 있는 선비로 보고 봉림대군의 사부로 임명, 소현세자를 따라 청나라에 볼모로 가게 하려는데, 송시형이 사부 되기를 거듭 사양하자, 인조는 그를 오해하여 하옥시키고 참혹한 형벌을 주고 겨우 석방되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지 수십 일 만인 1638년(인조 16년) 1월에 죽었다. 묘소는 청주 남쪽 사현리 선영에 있다. 부인은 파평윤씨는 사헌부 장령 윤전의 딸로 4남을 두었다. 장남 송기선(宋基善)은 진사이며 3남 송기명(宋基明)은 참봉이고, 4남 송기태(宋基泰)는 중추부 동지사로 우암의 양자가 되었다.

■사촌형 송시담   

송시담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자는 대이(大而), 호는 부훤당(負暄堂)이고 부친은 습정공 송방조(宋邦祚)이고 어머니 진주정씨이다. 1605년(선조 38년) 출생, 1662년(현종 3년)까지 살았다.

아버지 송방조가 죽은 후, 큰형 송시영과 둘째 형 송시형에게 배웠고 향시는 여러 번 되었으나, 사마시에는 실패하였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큰형 송시영이 강화도에서 순절하자 벼슬할 뜻을 접었다. 충남 예산 술곡리에 집을 짓고 살다가 1662년(현종 3년)에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을 두지 못하여서 친형 송시형의 아들 송기항(宋基恒)을 양자로 들여 송명석(宋命錫)과 송경석(宋慶錫)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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