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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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44)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5.02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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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국내 다른 대학들이 추진할 수 없는 해외 교육프로그램들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여 시행했던 일은 지금도 보람으로 남아있다. 학부생들을 위한 미국 뉴욕시립대학교(CUNY)와의 3+1 공동학사학위 프로그램, 졸업간호사 학위 취득을 위한 RN-BSN 1년 프로그램, American University of Antigua(AUA) 의과대학과의 4+4 복수학위제 체결, 간호대학에 글로벌의과학과 개설을 통한 최초 미국 의사 면허 취득프로그램, 노르웨이 간호사 취업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성신여대 학생이 성신여대에서 3년을 수학한 후, 성신여대 등록금만으로 일체의 경비부담 없이 미국 CUNY에서 1년 수학하는 것으로, 성신과 CUNY 양교 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은 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경쟁률 또한 어마어마했다.

CUNY RN-BSN 역시 전례가 없는 프로그램으로 미국 간호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이었다. 전국 각지의 간호사 중 선발하여 CUNY 대학에서 1년 수학할 수 있도록 하고, 졸업하면 미국 간호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는 매년 CUNY 졸업식에 초대되어 이 대학 총장과 함께 참석하고, 우리 한국 학생들에게 졸업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참으로 영광스럽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AUA와의 미국 의사 면허 취득프로그램의 시작은 2007년 8월, Paul학장이 내게 보내준 책자에서 우리나라와 미국 의과대학의 차이점을 발견하면서 개발한 획기적인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은 의과대학에 입학하면 의예과 2년, 본과 4년의 6년 과정인데 미국은 프리메디컬(Pre-Medical) 프로그램 2년(62학점)은 타 대학에서 이수한 후 본과 4년에 지원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제도적인 차이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성신여대를 제외한 서울 소재 간호대학은 의과대학이 있었지만 성신여대가 의과대학을 신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AUA 의과대학 의예과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AUA 닐 사이먼 총장측과 연락을 취했다. 닐 사이먼 총장을 만난 것은 2008년 1월, 뉴욕에 1m가 넘는 폭설로 학교 휴교령이 내려진 날, 맨해튼의 AUA 대학본부에서였다. 총장 비서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에서 기다리며 바라본 창밖은 그야말로 설국이었다. 그 순간 외로움이 엄습해 왔다.

“대체 내가 왜 악천후 속에서 이역만리 뉴욕에 혼자 와 있는 거지? 

정말 내가 봐도 나는 못 말리는 사람이지?”

그때 총장을 비롯한 여섯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사이먼 총장이 함께 온 두 명의 부총장, 의대학장, 교무처장을 차례로 소개했다. 나 혼자 그들 여섯 명을 마주하고 앉았다. 나는 애써 담담한 마음으로 제안 배경을 설명해 나갔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3국이 설립한 북유럽식 교육제도로 운영해온 유일한 국립 간호대학으로 운영되다가 성신여대와 통폐합된 우수한 간호대학임을 설명했다. 그리고 해외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서 우리 성신여대와 AUA가 의과대학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즉, AUA의 62학점 프리메디컬(Pre-Medical School)코스를 우리 성신여대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맡겨달라는 요청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62학점을 이수한 학생들은 별도의 시험 없이 AUA 의과대학 본과와 연계되는 공동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두 대학 간의 MOU 체결을 요청했다. 그날 만남의 핵심이었다. 내 제안을 들은 총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제안한 양교의 공동사업안은 부총장이 먼저 긍정적으로 검토해본 후에 내일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했다. 폭설을 헤집고 온 보람이고, 절반의 성공이라 믿었다.

다음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AUA 본부에서 다시 그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성신여대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로 결정했음을 내게 알렸다.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기쁨을 나눌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나는 이런저런 꿈에 부풀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귀국하자마자 먼저 교육부 담당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과장에게 AUA대학과 연계하여 의예과 프로그램을 성신여대에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다소 들뜬 마음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교육부 과장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내 부푼 꿈을 여지없이 날렸다.

“학장님 아이디어는 정말 다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좋은 아이디어예요. 그런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의과대학 의예과 2년 프로그램을 4년제 대학인 성신여대에서 어떻게 2년짜리로 운영할 수 있겠어요? 그렇다고 의예과 프로그램을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할 수도 없는 일이니, 아깝지만 학제와 맞지 않아 실제로 운영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부푼 마음이 청천벽력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나도 물러서지 않고 다시 강조했다.
“아니,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마시고, 내게 며칠 말미를 주면 더 연구를 해볼게요. 절대로 저는 이것을 포기할 수 없어요, 절대로.”그렇게 말은 했지만, 눈앞은 이미 캄캄해져 있었다.

담당과장과의 통화 이후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엔 온통 의예과 프로그램을 도입할 실마리를 찾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우리 대학이 4년제이니까 4년제 학과를 신설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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