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오일장엔 사람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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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오일장엔 사람 냄새가
  •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24.08.01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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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중복 날이 이십오일 오일장이다. 할머니 한 분이 장바닥에서 아들 같은 장사꾼에게 닭을 산다. 

 “저거 만 원짜리 한 마리 줘!” 
 “아 왜 만원 짜릴 잡숴, 만 팔천 원짜리나 이 만원 짜리 큰 거 잡수지!”
 “늙은이 둘이 그걸 어떻게 다 먹어!”
 “아, 불러 대!” 

닭이 먹고 싶으면 찾아가 단골로 사는 사이라 아들 같은 장사꾼과 할머니는 아주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오늘 집사람이 장마당에서 닭 사며 했던 이야기를 나에게 전한 말이다. 우리는 만 원짜리 닭으로 삼계탕을 끓여 둘이 맞보고 앉아 맛있게 먹으며 그 이야기로 한참을 웃었다. 만 원짜리도 남았는데 이만 원짜리를 샀다면 그 장사꾼 말마따나 자식들이라도 불러다 대야 다 치웠을 것이다. 

옛날 시골 면 소재지에도 오일장이 서면 시골은 명절날이 된다. 아무리 바빠도 장날은 장엘 나와야 직성이 풀린다. 뭐 크게 살 것도 없다. 그래도 장에는 나온다. 장바닥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장사꾼은 물건 조금 펴놓고 막걸리 한 사발 먹고는 흥타령이 절로 나온다. 여기저기 장돌뱅이들이 흥겹게 불러대는 노랫소리가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로 종일 그치질 않는다. 열 일 제치고 나온 사람들도 친구 만나 막걸리 몇 사발에 도도 하게 취해 기분이 좋다.

 “저기 저 괭이 얼마야?”
 “오천 원!”
 “오백 원 깎아!”
 “안돼! 그렇게 깎으면 하나도 안 남아!”
 “안 남긴! 얼른 줘!”
 “허 참!… 엣다 가져가!” 

어려운 시절에도 서로 여유가 있었다. 아등바등 이라는 게 별로 없었다.

시골에서 농사지은 콩 몇 말 지고 나와야 몇 푼 못 받는다. 한꺼번에 가마니떼기로 내기도 하지만 대개 몇 말씩 지고 나올 때가 많다. 그걸로 집에 필요한 거 몇 가지 사고 나면 돈이 떨어진다. 그래도 돌아올 땐 막걸리 몇 사발은 걸치고 거나하게 취해서 온다. 장날은 사람 냄새가 진동하는 날이고 시골의 명절날이다.

세월이 흘러 읍 단위 시골에도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휘황찬란하게 들어섰다. 될 수 있으면 대형이어야 사람이 몰린다. 시설도 좋고 물건도 좋고 깨끗한 이런 매장들이 오일장이나 재래시장이 설 자리를 없애고 있다. 우리 집도 대개는 생필품을 이런 대형 매장에서 구입 한다. 다만 아직도 오일장의 향수를 못 잊어 생선이나 닭 등은 오일장에서 사고, 살 게 없어도 장날은 거의 장바닥엘 나간다.

현대식 대형 매장은 물건도 좋고 시설도 좋지만 옛날 같은 사람 냄새는 안 난다. 정찰제로 십 원도 에누리가 없고 자기 손으로 담아다 계산대에서 값을 치르면 그만이다. 모든 게 정형화해서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흥정하는 맛이나 오가는 사람 맛이라는 것은 볼 수가 없다. 

젊은 사람들은 오일장 장바닥엘 잘 안 나간다. 그들의 체질은 지저분한 장바닥이 안 맞는다. 그래서 오일장은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있다.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오일장 장돌뱅이들은 오늘은 이 장, 내일은 저 장으로 돈다. 그래서 장이 서는 날이 다 다르다. 그런데 거기 장사꾼은 대개 나이들이 많다. 자꾸 그분들이 세상을 뜨는지 오늘 장에 보이던 사람이 다음 장날 안 보인다. 이 빠진 것처럼 자꾸 빈자리가 생긴다. 우리 같은 나이 든 사람들에겐 너무 서글픈 현실이다. 장바닥도 옛날보다 많이도 쪼그라들었다. 한참 흥청 거릴 때 비하면 반이나 될까, 이러다 아주 사라지겠지……

세상은 자꾸 발전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옛것은 사라져야 한다. 오일장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우리 같이 나이 든 사람들일 것이다. 한데 사람 사는 데엔 전통이란 것도 있다. 전통시장도 그런 맥락이다. 예술도 전통을 불러내어 현대예술과 접목하려 시도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노래도 전통가요(트롯)가 뜨고 있다. 아파트 같은 현대식 주거환경에 한옥마을이라는 것도 생겨나고 있다. 

지금에 와서도 한복은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이것을 사라지게 한다면 우리의 큰 실수가 될 것이다. 김치도 우리 음식의 상징이다. 우리는 김치가 몸에 밴 민족이다. 버리고 사라지게 하는 것만 능사는 아니다. 사람 사는 맛은 버리고 새로운 것만 찾는 데 있지도 않다. 오히려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지는 데 있지 않을까. 나이 든 사람도 배척하면 안 된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이렇게 자랑스러운 선진국 반열에 올리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있다. 서로 화합을 해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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