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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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56)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8.08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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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써 내려간 감사의 편지엔 교수님을 엄마처럼 의지하고 살 수 있어 행복했고 감사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거기에는 영양 크림이 함께 들어있었다. 영양 크림을 보며 이 크림을 사기 위해 얼마나 용돈을 아껴 썼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렸다. 나는 그 크림을 도저히 쓸 수 없어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나중에 취직했다며 다시 찾아온 그 학생에게 긴 설명을 하며 내어 주었다. “이제 취직해서 직장도 나가게 되었으니 이 크림이 필요한 사람은 정작 네가 아니겠니? 난 많이 있으니 네가 가져다 예쁘게 쓰렴.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야!”

양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 자란 쌍둥이 자매가 우리 대학에 입학했다. 언니는 국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동생이었다. 쌍둥이 동생이 부모 없이 조손가정에서 가난과 싸우며 겪었던 눈물겨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하느님이 계신다면 순진하고 착한 아이들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 생각했다. 내가 이들의 선생으로서 과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자신 없었다. 이 학생에게는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지금껏 외롭게 살아온 한 소녀의 슬픔을 함께 해 주는 부모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한 것 아닌가? 이런 아이에게 나는 어떤 교수가 되어줄 수 있을까? 어느 날 이 학생을 불렀다. 당장 등록금을 걱정하는 학생에게 나는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내가 우선 네게 돈을 빌려줄 테니 졸업해서 취직하면 반드시 이자까지 더해 갚아야 한다. 이 돈 절대 그냥 주는 것 아니야. 알았지?”

교수가 건네는 봉투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던 학생이 내가 빌려주는 돈이니 꼭 갚아야 한다고 강조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학생을 도울 때면 으레 꼭 갚으라는 조건으로 등록금이나 용돈을 건네곤 했다. 물론 지금까지 돌려받아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도움이 성공적으로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몇 번 그런 일이 반복되는 사이 이 학생도 무사히 동생과 함께 졸업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학생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수재로 아주 똑똑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입학 후 성적이 나빠지더니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는 아예 시험조차 보지도 않았다. 교수회의에서는 이 학생이 문제 학생으로 보고되어 논의 대상이 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학년 주임교수도 잘 모르겠다며 학생이 불성실하고 공부를 하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문제 학생이 마음에 걸렸다. 바쁜 업무의 연속이었지만, 그 학생을 불러 상담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조교에게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학생의 첫인상은 빼어난 외모와 총기가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나는 입학 후 학교생활, 그리고 친구 관계, 가족 상황 등에 관해 대화를 먼저 나누고 중간고사를 안 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학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전체 1~2등을 했어요. 그런 나에게 엄마의 기대도 컸고요. 주위 사람들이나 엄마 친구들은 제가 공부도 잘하고 예쁜 딸이니까 대학도 일류대학을 가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서울 S대 약대를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그 후 저는 고민하다가 간호사가 되기로 하고, 성신여대 간호학과에 지원하여 합격했지요. 그런데 문제는 엄마의 반대였어요. 재수하여 목표했던 약대에 가라는 것이었어요. 더 제가 견딜 수 없이 힘든 것은 엄마가 주변 친구들에게는 제가 처음 지원했던 약대에 합격하여 다니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 거예요. 엄마의 자존심이 빚어낸 거짓말 때문에 저는 고향에 내려가도 주위 사람들도, 친구들도 만나기가 싫어졌어요. 내가 약대 다니는 줄 알기 때문에 그런 거짓 행세를 한다는 일이 얼마나 괴롭고 견딜 수 없는 일인지 몰라요. 엄마는 어떻게든 다시 재수해서 약대를 가라고 막무가내세요. 저는 그 일로 혼란스럽고 고민에 빠져 방황하기 시작했고, 엄마가 밉고 싫어 졌어요. 그래서 수업시간에 들어가기도 싫고 공부할 마음이 나질 않아요. 중간시험이 닥쳐오자 공부는 하지 않았고, 시험을 본다고 해도 점수가 뻔해 차라리 결석해서 시험을 보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극장으로, 공원으로 그냥 쏘아 다녔어요. 모범생이었던 제가 이렇게 시험도 안보는 학생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내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던 학생은 그만 내 앞에서 펑펑 울었다. 어머니의 잘못을 자신이 감당해야 했으니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한참을 울도록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독여주었다.

“오늘 누구에게도 하기 힘든 이야기를 내게 해주어 고맙다. 너는 오늘 보니 누구보다 예쁜 외모와 좋은 머리를 가졌고, 가정환경도 좋아 복 받은 사람인 것 같다. 또 성격도 정직하고 반듯해 보인다. 엄마 문제는 네가 워낙 공부도 잘하는 딸이다 보니 그 기대가 지나쳐서 시작된 일인 것 같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간호학을 계속 공부할 것인지, 아닌지다.” 

“저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 간호학과에 왔고 또 간호학을 계속할 마음은 있는데 자신도 어찌해야 할지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됐다. 네가 간호사가 될 마음만 있다면 지금부터 네 하기에 달렸지. 지금 바로 집으로 내려가 엄마를 만나 너의 진심을 엄마에게 이야기하렴. 엄마가 생각만 바꿀 수 있다면 엄마도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엄마 생각엔 내가 약대 나와 약사를 하는 것이 그렇게 성공하는 길로 보이느냐고. 나는 그보다 간호학과를 나와서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고 서울에서 최고의 병원인 서울대병원, 연세의료원, 삼성의료원 같은 큰 병원에서 멋진 유니폼 입고 당당하고 멋진 간호사가 되어 그곳에서 성공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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