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56)
상태바
‘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56)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8.22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건 네 인생의 문제이니 너의 의견을 존중해달라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 좋겠다. 아마 모르긴 해도 엄마도 주위에 거짓말하고 사는 나날이 지옥 같을 거다. 너와 엄마가 지금껏 나누지 못한 대화를 나누면 엄마도 너의 성숙하고 바른 생각에 미안함을 느끼고 네 편이 되어주실 거야. 동시에 엄마도 깊고 어두운 고통의 터널에서 너와 같이 환한 빛을 보며 살 수 있고.”


며칠 후 이 학생이 카드 한 장을 들고 웃으며 나를 찾아왔다. 


“학장님 말씀대로 엄마와 그렇게 좋은 결론을 냈어요. 엄마가 미안해하셨어요.”


학생이 놓고 간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학장님 감사합니다. 또 감사합니다. 사실은 지난 시간 힘든 방황을 하며 정신과 상담도 해보고 심리학 상담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장님을 뵙고 학장실을 나오면서 제가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학장님 말씀대로 엄마도 그간 저만큼 괴로우셨었나 봅니다. 터널이 어두울수록 터널 밖의 빛은 더 밝아 보였습니다. 이제 제게 더는 좌절과 절망, 갈등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 주위 친구 중에 저같이 힘든 친구가 있으면 정신과 상담 말고 학장님을 찾아뵈라고 해도 될까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 학생은 나에게 참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다시 일깨워주었다. 교수란 모름지기 늘 학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또한 무엇보다 학생의 내면과 숨겨진 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국립의료원간호대학 입학시험에는 정원 외 특별전형이 있었다. 대학졸업자 또는 전문대학 졸업자를 정원 외 10% 선발하는 제도이다. 이정원 외 특별전형에는 보통 경쟁률이 30~50:1이 되었다. 특히 NMC는 서울대, 연대, 고대, 이대를 비롯한 전국 대학교 졸업자들이 매년 대거 몰려 어떤 학생을 뽑더라도 훌륭한 재원들이었다. 대기업 재직 사원, 중·고교 교사, 외국 석사 등 불합격시키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들이 많아 매년 마지막 합격자 확정 회의에서는 교수들이 아쉬워하곤 했다. 


서울상대 졸업자, 고대 식품공학과 졸업자, 연대 영문과 졸업자 외에도 명문대 졸업한 남학생들도 3개 학년에 다수가 있었다.


어느 날 연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우리 대학에 입학한 남학생이 내 방을 찾아왔다. 단정하고 훤칠한 외모에 차분한 성격으로 보였다. 나는 그 학생의 얼굴에서 언뜻 스치는 그늘을 보았다. 이 학생은 중고등학교시절에 집 안팎에서 머리 좋고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들로 소문이 나 있었다. 특히 엄마에게는 희망이고 존재하는 이유였다. 대학입시에서도 연대 영문과에 지원해서 당당히 합격했고, 엄마의 관심과 기대 속에서 무탈하게 대학도 졸업했다.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우리 NMC에 지원했다. 어머니와 상의 없이 혼자 원해서 진행한 일이었다. 합격한 후에야 어머니에게 간호대학 합격 사실을 말하고 3년만 더 대학을 다니게 해달라고 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외모나 학벌 어느 것도 빠지는 게 없는데 대기업에 취직해서 다니다가 결혼할 것이지 남자가 이제 다시 무슨 간호대학이야?”


어머니는 펄펄 뛰며 격렬하게 반대하셨다는 것이다.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자 더는 내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한 학기가 지나도록 지금까지 눈도 맞추지 않고 아침도 안 해 주셔서 매일 굶고 등교하고 있다고 했다. 연대 다닐 때는 아침에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점심도 싸주시던 엄마가 아예 아들을 보려고도 하지 않으시니, 힘들어서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할지 그만두어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고민스럽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학생의 어머니라도 그랬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멀쩡한 대학 졸업한 아들이 어느 직장이든 취직해서 자리 잡고,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잘 살 거라고 믿었는데, 느닷없이 간호사가 되려고 간호대를 또 다니겠다니…. 그건 어느 어머니에게도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그 어머니의 아픈 마음이 백번 이해되었다. 내가 간호학 교수이기 때문에 학생에게 학교를 자 퇴하지 말고 간호학을 공부하라고 충고하는 일이 과연 양심적인 일인가? 일반적으로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이 자신의 신상문제로 상담을 청해 왔을 때 학교 공부를 계속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학생에게 백이면 백 당연히 학업을 계속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교수가 할 일이었다. 그런데 난 아들 둘을 둔 엄마의 심정으로 만일 내 아들이 그런 선택을 했다면 과연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주었을까 하고 몇 번을 곱씹어봤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학교를 선택한 주체는 이 학생이고, 또 간호학을 선택한 이유가 일시적인 마음이 아닌 진정한 본인의 선택이었고 그 결정에 후회가 없고 아직도 자신의 결정을 존중하고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학생에게 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너의 마음에 달렸다. 이것은 안타깝게도 엄마의 인생이 아닌, 네 인생에 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 간호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변함이 없어?”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엄마하고 앞으로 2년 이상의 세월을 이런 상태로 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제가 학교를 포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학생 스스로 어떤 결정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 엄마한테 무릎 꿇고 진정으로 엄마와 상의 없이 간호대학에 지원해서 입학한 것에 대한 네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빌어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