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앉은부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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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앉은부채꽃
  • 손수자 수필가
  • 승인 2024.09.2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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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리고 앉아 애기앉은부채꽃을 들여다본다. 가부좌를 한 부처의 모습이 신비롭다. 
자기 내면의 세계를 관조하는 듯한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그런 모습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여러 사람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편이다. 숫기를 많이 타는 편이라서 학창 시절에도 있는 듯 없는 듯한 아이였다. 어쩌다 여러 사람 앞에 나갈 일이 생기면 혼자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그런 나를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은 나를 퍽 적극적인 사람으로 여긴다. 나는 혼자 있으면서 사색하기를 즐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미지의 세계를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직장생활하면서 나는 적극적이고 말도 제법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런데 직장을 벗어나니 내 본성이 되살아난다. 예전처럼 잊히지 않을 만큼만 조용히 살고 싶은 것이다.


어성전 숲에는 내 성격과 비슷한 식물이 있다. 잎이 무성하게 자란 후에도 화려하게 꽃을 피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잎이 지면 그제야 조심스레 땅을 뚫고 피어나는 꽃. 꽃 색깔이 검은 자주색인 데다가 작아서 눈에 쉽게 띄지 않아 발에 밟히기 쉬운 꽃이다. 그 꽃에서 동지애를 느낀 것일까. 작지만 홀로 사색에 잠겨있는 듯한 애기앉은부채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애기앉은부채는 이른 봄 어성전 숲에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연둣빛 잎을 도르르 말아 힘차게 땅을 헤집고 올라온다. 잔설이 있어도 아랑곳없다. 숲속의 용사 같다. 따뜻한 봄볕이 그리운 으스스한 숲에서 그 모습을 보노라면 움츠러졌던 어깨가 절로 펴진다. 애기앉은부채는 나뭇가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햇빛을 받아 열심히 광합성 작용을 하여 양분을 비축한다. 나뭇잎이 우거져 빛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면 양분을 만들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물러난다. 그 후에 비축한 영양분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내가 애기앉은부채꽃을 처음 본 것은 작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숲 체험장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야외 교실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풀숲을 걷고 있는데 부근에서 일하던 산림교육관을 관리하는 숲 해설가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애기앉은부채꽃이 피어 있으니 밟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발밑을 내려다보았지만, 꽃이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레 발을 옮기며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이 답답했던지 그분이 가까이 와서 애기앉은부채꽃을 찾아 주었다. ‘세상에 이런 꽃도 있었던가?’ 꽃 모양이 신기했다. 겉모양은 갈색 같고 보라색 같기도 했다.


앉아서 꽃을 들여다보니 꽃잎 안쪽은 자주색이 고급스러웠다. 그 안에는 노르스름한 꽃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동화책의 도깨비방망이 같다고 하고, 수류탄 같다고도 했단다. 나도 그렇게 느낄 뿐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기앉은부채는 잎이 무성하게 자라서 사라진 후 뒤늦게 꽃을 피운다. 잎과 꽃이 만날 수 없으니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상사화와 동병상련일 것 같다.


애기앉은부채는 몸에 독성을 지녀 자신을 지키는 방편으로 삼는다. 애기앉은부채의 잎 모양이 취나물과 비슷하여 사람이 잘못 알고 먹을 수 있다. 그리되면 심한 구토와 설사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니 잘 모르는 식물은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 동물들도 이 식물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이나 멧돼지가 애기앉은부채 잎을 뜯어 먹고 겨울 동안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배설해 낸다고 한다. 애기앉은부채가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본능일 것이다.


애기앉은부채라는 이름은 그와 비슷한 앉은부채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안은부채’는 주로 남부지방에 서식하는데 불연포 안에 있는 꽃차례가 가부좌를 틀고 있는 부처를 닮았다 하여 ‘앉은부처’라고 했다가 ‘앉은부채’로 불렀고, 잎이 부채처럼 넓어서 앉은 부채라고도 한단다.
애기앉은부채는 앉은부채보다 잎이 좁고 작아서 그 이름 앞에 ‘애기’를 붙였는데 강원도 북부지방에 서식하는 희귀종이라고 한다.


애기앉은부채꽃!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꽃이지만, 초라하지 않다. 의기소침한 듯하나 오히려 고고한 자태다. 침침한 숲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꽃을 피우지만, 사람들이 자기와 눈높이를 맞추어야 제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가부좌한 모습으로 삶을 관조하는 애기앉은부채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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