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세월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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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세월 속에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11.1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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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숙희 수필가

오늘도 뿌옇게 안개 낀 아침을 활짝 열었다. 운전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쳐온 세월이 40년이다. 지금도 늘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한 가지 직업을 그토록 오래 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나에겐 지금도 목숨과도 같은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에 지금까지 묵묵히 걸어왔다.

오후가 되자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 “사랑 합니다”라고 인사하면서 낡은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학원에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은 가방을 내려놓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늘은 기분이 짱이다”, “기분이 별로다” 하면서 갖가지 일들을 나에게 보고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일이 있었어?“하고 다정하게 대꾸를 해주었다. 많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이기 이전에 따뜻한 엄마가 되고 친구가 되고 함께 고민하면서 즐겁게 공부를 하고 있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니 낙엽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가을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아주 무더운 여름이 생각났다. 오늘은 학원 안에도 가을바람이 불어 스산해지는 느낌이다. 아마도 가을이라는 아름다운 계절에 흠뻑취하고 싶어서일까?

갑자기 생각이 내 몸을 덮어씌운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피아노소리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네가 던진 칭찬 한마디에 아이들은 행복해하며 뛰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의 눈은 맑은 이슬과도 같다. 자장면이면 최고였던 어린 시절, 100원만 손에 쥐어줘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던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 내앞에 서 있다.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그때 그 아이들이 햇살 같은 어여쁜 꽃잎으로 찾아와 이렇게 촉촉한 그리움으로 남게 될지 그땐 미처 몰랐다. 지금은 엄마가 되고 아빠가되어 있을 그 아이들, 사회에서 갖가지 일에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 모습이 마냥 뿌듯하고 기쁘다. 간간이 들려오는 제자들의 소식에 나는 오늘도 피곤한 줄 모른다.

그 힘에 힘차게 달리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사랑과 봉사’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아주 오랫동안 실천하고 싶다. 해마다 피아노 대회로 자신감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예전엔 서울 63빌딩에서 대회를 치렀다. 끝나고 난 뒤엔 유람선을 타면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아이들을 가르친 40년 세월 동안 인내와 믿음하나로 작은 산과 큰 산은 넘어 쉬지 않고 걸어온 나, 지금은 하늘에 핀 예쁜 무지개를 보는 것 같다. 얼마 전에 3학년 아이가 선생님이 사는 집을 많아 보고 싶어 했다. 예전부터 졸라댔는데 시간이 되질 않아서 그날 잠시 데리고 왔다. 그 아이는 여기 말고 “선생님이 사는 집에 가요”라고 자꾸 말을했다.

“이곳이 내가 사는 집이다”라고 말을 했더니 그 아이는 실망스런 눈으로 물끄러미 주위를 둘러보더니 “선생님은 창고에서 살아요?”라고 말을 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그 솔직하고 당당함에 그 아이가 귀엽고 예뻤다. ‘나는 내가 사는 집이 창고 같다’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비록 창고 같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기에 내일을 또 어떤 모습으로 아이들과 미래의 꿈을 꾸면서 지낼까 늘 마음이 설렌다. 하나하나 귀여운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나는 아주 오래된 고목나무처럼 항상 그 자리에 서있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땀을 식히며 쉬어가는 그늘이 되어주고 싶다. 아이들이 나의 오래된 고목나무 그늘에서 내일의 꿈을 그리며 건강하게 웃고 뛰어노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움이 쏟아지는 이 가을에 오늘은 유난히 40년 세월 속의 아이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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