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집애가 호랑이띠면 팔자가 사납다고 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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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애가 호랑이띠면 팔자가 사납다고 하지 않아요?”
  • 고은광순
  • 승인 2016.12.15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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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광순의 ‘해월의 딸, 용담할매(청산편)’

사회를 향한 평등철학을 주창해온 여성평화운동가가 여성의 시각으로 동학적 삶을 다룬 여성동학다큐소설을 펴냈다. 고은광순(61)씨의 ‘해월의 딸, 용담할매(청산편)’는 여성 활동가와 교사, 작가 등 14명으로 구성된 저자그룹 '동학언니들'이 지난 5월부터 동학농민운동과 관련된 여성 다큐소설 13편 출간 작 중 하나이다. 호주제폐지운동, 내제사거부운동 등 교육시민운동으로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던 그가 명상공부와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청산의 산 속에 들어와 집필한 동학에 얽힌 ‘해월의 딸…’ 요약본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날씨가 따듯해지자 윤이는 부쩍 밖에 나와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윤의 어머니 김 씨는 마당 한쪽의 흙을 손가락으로 헤치며 윤에게 와서 보라고 했다. 김 씨가 흙을 헤친 곳에는 연둣빛 싹이 뾰족이 드러났다.

“아아…” 

윤이는 감탄을 하며 동그란 눈으로 김 씨를 쳐다보았다

“얼마 전까지도 여기에 눈이 덮여 얼어 있었는데...”

“빨래터 큰 바위 옆 소나무도 이렇게 조그맣게 시작했단다.”

“어엉? 저 큰 나무들도 이렇게 작게 시작했던 거라구요?”

“그럼!”

“아웅… 세상에… 그렇구나!”

배연화, 최덕기, 최윤 모두 김 씨가 낳은 아이들이다. 첫 남편 배서방은 양반 손에 맞아 죽었고 열한 살 된 연화를 데리고 단양 송두둑에서 경주 사람 최시형과 혼인을 해서 덕기와 윤을 낳았다. 그 역시 첫 부인과 딸들을 난리통에 잃었다고 했다. 그는 한없이 어질고 부지런했다.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점잖았다. 남편에게 무언가를 묻고 답을 들었는데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층 평화로운 미소가 감돌았다. 손님 뒤치다꺼리가 많아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정해(1827)생이니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48세였고 지금은 57세가 되었다. 그러나 김 씨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남편이 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니 남편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남편은 항상 하루가 바뀌는 해시와 자시(밤 11시~1시) 사이에 청수를 떠놓고 치성을 드렸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남편이 동학 선생 최제우로부터 동학의 도통을 이어받은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 해월 최시형이라는 것을 인연을 맺어준 오라비로부터 듣기는 했으나 그때만 해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김 씨가 처음 그 주문 외우는 모습이 낯설어 놀라는 표정을 지었을 때 최시형은 조용히 설명해 주었다.

“내 나이 35세에 동학을 세운 수운 스승님을 만났지요. 주문은 그 가르침의 고갱이라오. ‘지극한 한울기운 지금 여기 크게 내리소서. 내 가슴속 한울님 모시니 조화가 자리 잡고, 영원토록 잊지 않으니 만사가 다 깨달아지리다.’ 이런 뜻이라오. 지금은 낯설어도 차차 이해가 될 것이오. 스승의 가르침은 내 차차 전해 드리리다.”

그 뒤로 더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말과 행동거지가 여느 사람들과 달랐다. 모든 존재가 안에 한울을 모시고 있다며 아내인 김 씨와 연화 그리고 솔봉(덕기)과 윤, 그를 찾아오는 제자들도 나이나 신분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이 그윽한 공경심으로 대하였다. 뿐만 아니라, 집에 기르는 가축은 물론이고 풀 한 포기, 나무 하나까지 마치 귀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대하였다. ‘하늘 사람’이라는 것이 바로 저런 사람인가 하여 김 씨는 남편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곤 했다. 자주 출타를 했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꽃을 좋아하는 어린 딸을 위해 쑥부쟁이며 채송화 등을 뿌리째 구해다 주기도 했다.

공주사람 이필제가 있었다. 일찍이 수운의 제자가 되었다는 그는 각 고을마다 계속되는 탐관오리들의 횡포를 그냥 볼 수 없었다. 1871년 따르는 동학도들이 많은 해월에게 다섯 번이나 사람을 보내 함께 영해부사 이정을 치자고 회유했다. 마지못해 참여를 했으나 거사 중에 열일곱살 양아들 준이와 수 백 명의 동학도를 잃었다. 급한 피신 길에 손 씨 부인과 딸들과도 헤어지게 되었다. 관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해월은 강원도 양양으로 인제로 숨어들었다. 인제 김병도의 집에서 부모를 잃은 그의 조카 김연국이 입도했는데 열여섯의 김연국은 바로 수행제자가 되겠다며 해월을 따라나섰다. (김연국은 10년 뒤 김 씨 부인이 데리고 들어온 딸 연화와 백년가약을 맺고 해월의 사위가 되어 해월이 처형되는 날까지 곁을 지켰다.)

단양의 송두둑은 해월이 입도 후 가장 오래, 가장 평화롭게 살았던 곳이었다. 꺼져 가는 동학의 불꽃을 살려낼 수 있었던 고마운 동네였다. 그러나 어느 날 화승총을 가진 두 명의 사냥꾼이 사나운 눈초리로 그 집 근처에서 어른대자 해월은 곧 바로 옆에 두었던 보따리를 매고 집을 나섰다.

김 씨 부인은 짐을 꾸려 몇 달 뒤 남편이 보낸 제자들을 따라 인적을 피해가며 300리 떨어진 상주 화서 봉촌리 앞재의 낡은 집에 도착했다. 먼지를 털어내고 짐 정리를 하던 김 씨의 눈에 윤이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란 김씨가 걸레를 들고 뛰어 나가보니 윤은 뒤뜰 양지바른 곳의 돌무더기들을 치워놓고 주머니 이쪽저쪽에서 뿌리와 씨앗들을 꺼내어 여기저기 심고 있었다.

“그게 뭐냐?”

“응. 돌나물 뿌리들하구 채송화 씨앗이야요. 돌나물이랑 채송화는 옮겨 심어도 아주 잘 자라거든.”

밤에 자리에 누운 김 씨는 호롱 밑에서 짚신을 삼기 위해 왕골을 다듬는 해월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윤이는 참 남다른 아이에요.”

“그럼. 속이 깊은 아이지요.”

“그런데 그 아이가 무인(1878)생 아닙니까? 계집애가 호랑이띠면 팔자가 사납다고 하지 않아요?”

“강하면 좋지요. 쓰러지지 않을 겁니다. 그랬대두 금방 털고 일어나겠지요.”

해월은 평안한 얼굴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감사한 일이구요. 당신은 언제 주무시나요? 좀 쉬엄쉬엄 하시지요.”

“하늘이 노는 것 보았소? 놀고 있으면 하늘님이 싫어하신다오.”

해월은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아내의 발을 만져보고는 차갑다며 이불을 끌어내려 덮어 주었다.

상주에서 두 번째 설을 맞았다. 해월은 여전히 여기 저기 다니며 동학을 전파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가까운 뒷산에 진달래가 한창일 무렵 김 씨는 간단한 여장을 꾸려 아침 일찍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누구네 집에 가나요?”

“덕기야, 손 씨 큰어머니 생각이 나느냐?”

“손 씨 큰어머니? 모르겠는걸요.”

저녁나절에 보은에 당도한 김 씨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큰 어머님께 인사드려라.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셔.”

“어?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시라구요?”

아이들은 눈이 둥그레져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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